[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6일 운명 결정
국회 부결 시 사법 수장 공백 장기화
전원합의체 중단 등 사법부 운영 파행
양승태·김명수 12년 법원 정치화 심화
극단의 정치도 사법부 불신 부추겨
헌법과 법률 충실한 법치 근간 세워야
6일이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운명이 갈린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 30년 만에 사법 수장 공백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여야가 임명동의안 표결 처리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자의 국회 임명 동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법원장 임명 동의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하는데 168석의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내 부결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상당 기간 사법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 내년 1월이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하는데 대법원장 공석으로 신임 대법관 제청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법관 정기 인사도 차질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 변경이 필요할 때 열리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전면 중단되고 상고심 심리와 각급 법원의 재판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면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현재의 우리 사법부는 하루속히 새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해 추락한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15대 양승태, 16대 김명수 대법원장을 이어 오는 12년 동안 사법의 정치화는 심화했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바닥을 쳤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으로 헌정사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을 임명했지만 그 또한 법관 코드 인사로 논란을 키웠고 정치권 눈치를 보다 거짓말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부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다분하다. 정치는 없고 정쟁만 난무하는 극단적 정치는 결국 많은 결정을 사법부로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겼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 통합이고 그 과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가능한데 고소·고발만 난무하다 보니 정치의 사법화는 가속화했다. 결국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는 권력에게 결정을 미루는 방식으로 국회 스스로 대의제 민주주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 논란이 우리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도 6:3 보수 우위로 기울면서 각종 보수적 판결로 정치화 논란을 빚고 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잇단 진보적 판결로 사법부 중심을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버츠는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는데 당시 상원 인준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 22명 중에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도 있었다. 이후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오바마 케어’를 도입했는데 보수 진영에서 위헌 소송을 제기할 때마다 로버츠가 제도를 옹호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진영에 매몰되지 않은 대법원장이 이념의 균형추 구실을 하고 사법부 독립도 공고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민 정책에 제동을 건 연방법원을 ‘오바마 판사들’이라고 비난하자 로버츠는 “사법부에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클린턴 판사도 없다”는 반박 성명을 내며 사법부의 권위와 위상을 지켰다.
우리도 대법원장 흑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발췌 개헌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법원을 공격하자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라”고 맞대응했는데, 사법부 독립을 강조한 사례로 지금도 회자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임명한 윤관 대법원장은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대법원장이 공항에 나가는 관행을 없애고 대법원장실에 걸었던 대통령 사진도 떼도록 하는 등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영장실질심사제도 도입 등 사법 개혁에 앞장서면서도 스스로는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배달해 혼자 해결하는 등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재산 신고 누락과 자녀 특혜 등 각종 의혹으로 불안한 출발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도 “판사가 홈 관중에 열광하고 싶을 때는 사표를 내고 다른 일을 찾아볼 때”라는 루스 긴즈버그 전 미연방대법원 대법관의 어록을 인용하며 사법부 독립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가 국회의 문턱을 넘어 사법 수장으로 임명된다면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고 독립을 굳건히 한 대법원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가 인용한 긴즈버그는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우리는 지금 시대의 변화를 먼저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판결로 제시할 수 있는 사법부 수장을 기다리고 있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