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록도 천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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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는 문둥이끼리 반갑다.//(중략)…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1919~1975)의 시 ‘소록도 가는 길’이다.

예전 ‘나병’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 환자를 수용했던 전남 소록도는 시인의 묘사처럼 육지와 뚝 떨어진 고립과 단절의 섬이었다. 작은 사슴 모양을 닮아 ‘소록도’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천형(天刑)의 땅’이라며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었다. 일제 때부터 치료 명목으로 이곳에서 사실상 감금 생활을 해야 했던 환자들은 유전과 전염이 된다는 이유로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에게조차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1960년대, 오스트리아의 간호학교를 졸업한 푸른 눈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가 이곳으로 왔다.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이다. 이들은 오자마자 맨손으로 환자들의 상처를 치료했고, 환자들과 함께 식사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그때까지 환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기피와 배척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한 번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던 환자들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명의 ‘소록도 천사’는 자그마치 40년을 한센인의 엄마 역할을 하며 살았다.

2005년 소록도를 떠날 때의 모습도 가슴 뭉클하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는 스스로가 소록도에 부담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달랑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홀연히 섬을 떠났다. 떠나는 당일까지도 이를 비밀에 부쳐 큰 울림을 줬던 마가렛 간호사가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했다고 한다.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으면서도 끝까지 낮춤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마가렛 간호사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추모의 물결이 전국에서 일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전남도, 고흥군 등과 함께 전남 도양읍의 마리안느와마가렛기념관과 서울 간호협회 앞에서 4~8일까지 국민 분향소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진정한 사랑과 헌신을 평생 몸소 실천한 마가렛 간호사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울러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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