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3] "관동대학살 기록 없단 건 거짓말" 일본 정부에 일침 날린 일본 영화감독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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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소재 ‘1923년 9월’로 BIFF 찾아
역대 최대 규모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 마련
모리 감독 “日 정부, 실패한 역사도 제대로 인식해야”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모리 다츠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예찬 인턴기자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모리 다츠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예찬 인턴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 6000여 명이 학살된 ‘관동(간토)대학살’을 다룬 일본 영화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영됐다. 일본 정부는 올해로 100주기를 맞은 관동대학살에 대해 “기록 자체가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영화를 제작한 일본인 감독은 “일본 정부가 역사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라며 작심 비판했다.

“관동대학살에 대한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는 관방장관의 말은 거짓말이다. 관련 자료도 많고 학살을 목격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모리 다츠야 감독은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마쓰노 관방장관은 올해로 100주기를 맞은 관동대학살에 대해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모리 다츠야 감독의 영화 ‘1923년 9월’은 관동대학살 과정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인 ‘후쿠다무라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 지바현 후쿠다 마을에 약을 팔러 온 일본 상인들은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조선인으로 몰려 마을 주민에게 살해당했다. 마을을 찾은 상인 15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모리 감독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인 6000여 명이 끔찍하게 살해된 관동대학살 과정 전반을 담아냈다. 방송국 PD로 활동한 모리 감독은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를 다룬 작품 ‘A’와 일본의 보수적인 언론 문화를 지적하는 ‘나는 신문기자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받기도 했다.

영화 '1923년 9월' 스틸컷. 모리 다츠야 감독 제공 영화 '1923년 9월' 스틸컷. 모리 다츠야 감독 제공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찾아간 투자사들은 이유조차 밝히지 않은 채 투자를 거부했다.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코바야시 프로듀서는 “관동대학살 100주년인 2023년 9월 개봉을 목표로 3~4년 전부터 거의 모든 투자사와 접촉했지만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다”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았는데 2400명으로부터 3억 6000만 원이 모였다. 이는 역대 영화 관련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많은 모금액이었고 이후 인터넷 보안업체, 지역 방송국 등에서 투자를 받아 어렵게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달 일본에서 공개된 이번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의 경우 평균 60~80개 수준의 소규모 영화관에서만 상영이 이뤄지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대형 영화관을 포함한 200여 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코바야시 프로듀서는 “최근 제작에 참여한 상업영화의 경우에도 상영관 105개가 최고 기록이었다”면서 “상영관 200개를 확보한 것은 업계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모리 감독은 “제작 초기에는 일본 내에서 상영금지 운동까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오디션에 참여한 배우가 1000명 이상이었고 개봉 이후 호평이 쏟아져 매우 놀랐다”면서 “후쿠다 마을이 있던 노다시에는 피해자를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고 올해는 노다시 시장이 직접 애도를 표하기도 해 사회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모리 감독은 일본 정부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과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성장하지만 현재 일본은 과거의 실패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성공했던 경험만 기억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면서 “정치, 언론,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난징대학살을 포함한 안타까운 역사에 대해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동대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 분들이 많다는 것도 최근 알게 됐다. 불행했던 역사를 마주본다는 건 한국에도, 일본에도 중요한 일”이라며 “한국에서도 영화가 꼭 상영돼 많은 분이 관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전했다.

영화 '1923년 9월' 스틸컷. 모리 다츠야 감독 제공 영화 '1923년 9월' 스틸컷. 모리 다츠야 감독 제공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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