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민(私民)의 나라, 공민(公民)의 나라
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공동체보다 개인 우선시 되는 사회
공동선·공익·공동의 일 모두 실종
고용·소득 감소 국민 두려움만 증폭
SNS 등 뉴미디어 몰입, 소외 자초
확증편향 뉴스 노출로 인식 오류 발생
구성원 모두, 공익 우선하는 노력 절실
개인은 혼자 살 수 없고, 사회는 증오와 혐오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공동체와 분리되어 철저하게 개체화된 ‘개인’과 증오와 혐오로 갈등이 극에 달한 ‘공동체’ 속을 헤매고 있다. 개체화된 개인과 갈등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공익보다는 사익, 공동체보다는 개인, 공동의 일보다는 내 일이 우선시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회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이런 좋지 않은 사회에서 공동의 일 중 가장 중요한 정치는 개체화된 국민의 무관심과 비참여로 엉망이 되어 버렸고, 공익은 기득권자들의 사익 추구를 위한 화려한 위장물로 전락했다. 공익과 공동선, 공동체와 공동의 일이 모두 실종되었고, 이렇게 붕괴된 사회는 개체화된 개인들 간의 적나라한 사익 추구의 전쟁터로 돌변했다. 각자도생의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개체화된 개인의 등장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자본 축적 모델 속에서 기업과 개인 등 경제 주체들은 모두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더 유연화하는 동시에 더 많은 기계화와 자동화, 인공 지능화에 의존한다. 결과는 고용 감소와 실업 증가뿐 아니라 비정규직 증가와 그만큼의 서민층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그런데 고용의 감소와 불안정화 및 소득의 감소는 다수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줄어드는 좋은 직장과 정규직을 위한 경쟁이 격화되면서, 비정규직은 투잡, 쓰리잡으로 내몰리고 낙오자는 최후의 의존처 없이 은둔형 외톨이나 실업자로 전락한다. 이렇게 힘들게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개체화된 국민에게 자신의 일과 사익보다 공익과 공동선을 더 우선시하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개체화된 개인은 뉴미디어 발전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제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는 대면적 의사소통보다 혼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들고 SNS, 유튜브, OTT 등 뉴미디어에 몰입한다. 뉴미디어가 일상화되고 생활화되면서 사람 간의 직접 소통은 준다. 그만큼 개체화된 개인이 증가한다. 자유주의적 개인은 원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 뉴미디어 시대의 개인은 공익과 공동선, 공동체와 공동의 일에는 무관심한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개인이다. 무한경쟁과 고용불안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외롭고 불안하고 고립된 개인들이, 뉴미디어 환경에서 소외를 스스로 자초하는 부정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개체화된 개인은 권위와 가족의 붕괴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종교·규범·연장자·교사·정치·법의 권위가 심각하게 약화되고, 위로받고 재충전받아야 할 안락한 가정마저도 비혼과 저출산으로 사라져 가는 사회는 몹시 위태롭다. 이런 아노미적 사회 속에서 개인은 익숙하거나 의지할 곳을 상실하면서 더욱 고립되고 소외되어 더 큰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끼는 원자적 개체로 돌변한다. 문제는 이렇게 외롭고 불안하고 고립된 개인은 자신이 의존할 곳을 찾게 되고, 그것은 뉴미디어로의 몰입이나 전체주의적 정치 지도자에의 강한 희구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뉴미디어는 개체화된 개인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만 더 보여 주는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의 선호와 이념의 확증편향을 더 공고화한다. 그 결과, 개체화된 개인은 자신만의 선호와 이념의 확증편향에 갇혀 결과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를 더 우상화하고 상대 정치 지도자는 제거되어야 하는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길로 빠져든다.
이렇듯 확증편향에 빠지고 혐오의 정치에 물든 개체화된 개인들의 사회는 공익과 공동선, 공동체와 공동의 일을 지향하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사회는 지극히 위험하다. 예컨대, 인구감소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공동의 일이다. 하지만 개인들로는 인구감소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공동체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후속 세대를 키우는 일이다. 그들이 어떤 시민이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미래가 결정된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은 공익과 공동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성적 중심의 사익과 자신의 일만을 추구하는 업적주의, 개체주의로 몰락했다. 교육을 공동체와 공동의 일의 반석에 올려놓지 않는다면, 교육 개혁은 교사의 권위 회복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체화된 개인주의와 혐오의 정치로 무장한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지극히 위험하다. 공익과 공동선, 공동체와 공동의 일이 우리 사회에서 경시되고 무시되는 만큼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더 어둡게 침식된다. 개체화된 사민(私民)의 나라가 아니라 공민(公民)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우리 공동체와 구성원 모두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