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영화 도시 부산의 더 나은 내일
실로 영웅의 귀환이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로 부산을 찾은 배우 저우룬파(주윤발). 최고의 홍콩 누아르 ‘영웅본색’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했던가. 롱코트에 성냥개비를 입에 문 모습은 또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1980년대 말 성냥개비 대신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중국어 대사를 따라 하며 손가락권총을 쏘아대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명불허전이라 했던가. 그는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생애 내내 겸손하고 소박한 삶의 태도로 일관했다. 저우룬파를 홍콩의 아이콘이라 평가하는 것은 결코 과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영화와 연원이 깊은 도시다. 1925년 한국 최초의 영화기업이 부산에서 설립된 것은 동래 출신 연극인 현철(현희운)이 주도한 무대예술연구회 활동과 관련 있다. 이 단체의 연극이 재부산 일본인사회에서 호평을 받고, 무대예술연구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조선키네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48년에는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영화가 이끈 부산예술영화제작소에서 ‘해연(海燕)’을 제작했다. 1958년 최초의 영화상 부일영화상이 탄생한 지역도 부산이다. 그만큼 부산은 독자적인 영화문화를 일구고 확산한 도시라 할 수 있다.
이즈음 영화는 부산의 상징이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이 적지 않다. 영화의 제작과 유통배급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에서 지역 영화축제의 성장 동력은 부산영화인들의 헌신과 관객이 함께 일구어온 영화문화에 있다. 1980년대 영사기 2대만으로 출발한 한국단편영화제, 프랑스문화원 기반의 씨네필 문화, 부산가톨릭센터 수요영화마당과 같은 지역 영화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을 제외하면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하고 있는 도시가 부산이라는 점은 이러한 지역영화사의 전통과 영화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
‘영웅본색’의 영문 제목은 ‘더 나은 내일(A better tomorrow)’이었다. 폭력과 복수, 신파가 화면을 가득 채웠던 이 영화를 보며 우리는 어떤 내일을 꿈꾸었던가. 주제곡 ‘당년정(當年情)’은 좋았던 시절을 그리는 노래다. 한때 동방의 할리우드라 불렸을 만큼 번성했던 홍콩의 영화산업이 명맥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 영화의 새드엔딩과 무엇이 다를까. 영화인들이 떠나간 자리에서 지난날 화려했던 명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부산영화의 미래는 어떨까. 영화전공 학과가 5곳이 넘는데도 졸업생들이 썰물처럼 부산을 빠져나간다. 재능 있는 영화후속세대가 부산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펼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야 한다. 이로부터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더 나은 내일’이 밀물처럼 다가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