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상군 투입 ‘뇌관’ 터질라… 확전 대비 나선 중동·미국
이스라엘 지상전 개시 재차 예고
이라크·예멘 내 무장세력도 도발
미, 중동에 사드·패트리어트 배치
바이든 지상전 연기 위한 노력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22일(현지 시간) 16일째에 접어든 가운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이 ‘뇌관’이 돼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만류에도 가자지구에 곧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겠다고 재차 예고하고 나섰고, 헤즈볼라에 더해 이라크, 예멘 내 시아파 무장정파들까지 국지적인 군사 도발에 나서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이들 무장세력들의 전쟁 본격 개입에 대비해 중동 지역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를 시작하고, 병력 증파 준비에 나섰다.
이날 이스라엘 현지 일간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전날 밤 골란 보병연대 지휘관들에게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할 것이다. 하마스의 작전 시설과 기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과 전문적인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레비 참모총장은 “2주 전 안식일에 죽은 사람들과 상황들을 가슴속에 새길 것”이라며 지난 7일 하마스 무장대원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던 상황을 기억하라고 독려했다. 그는 이어 “가자지구는 복잡하고 인구가 밀집된 곳이다. 적은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이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강력하게 시사했던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의 19일 발언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스라엘군은 또 22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슬람 사원을 공습해 하마스와 또 다른 무장세력인 이슬라믹지하드의 테러 분자들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전투기를 동원해 서안을 공습한 것은 2000년 제2차 인티파타 이후 처음이다.
이에 질세라 헤즈볼라도 이스라엘군 지상군 투입에 대비해 강한 경고를 하고 나섰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21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상 공격을 시작할 때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2인자 셰이크 나임 카셈은 이날 헤즈볼라 대원 장례식에서 헤즈볼라가 이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전투의 중심에 있다”고 밝혔다. 카셈은 또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진압하려 하면 역내 다른 저항군들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20일 이스라엘 북부도시 마나라의 군사기지에 로켓 20여 발과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들의 도발도 잇따르면서 확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 20일 이스라엘을 향해 크루즈 미사일 3기를 발사하고 드론 여러 대를 띄워 인근 해역에 배치된 미 해군 전함을 요격하기도 했다.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 서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바그다드 국제공항 인근 다른 미군기지도 로켓과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현지 미군 보호를 위해 중동 전역에 사드 포대 배치와 패트리어트 대대 추가 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오스틴 장관은 21일 성명을 통해 “최근 이란과 중동 지역에서 이란을 대리하는 세력에 의한 긴장 고조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상세한 논의를 거쳐 지역 내 국방부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비상 대비 계획의 일환으로 ‘배치 명령 대기’ 상태의 병력을 늘렸다고 오스틴 장관은 밝혔다.
이렇게 확전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와중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확전을 막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백악관 출입 기자단의 풀 취재(공동취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델라웨어주 세인트 에드먼드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한 후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침공 연기를 권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날 이스라엘의 지상전 연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일부 혼선이 빚어진 상황에서 재차 바이든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또 나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더 많은 인질이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지상전을 미루길 원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통령의 발언에 착오가 있다며 급히 수습에 나서 촌극인지, 전략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헤즈볼라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한편 중동 국가들을 통해 헤즈볼라도 자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과 유럽 주요 국가의 정상, 외무장관들도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를 열고 이번 전쟁의 평화적 해법을 논의했지만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1일 오전까지 사망자는 4385명, 부상자는 1만 3561명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에서도 1400명 넘게 숨졌고 210명이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