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보 영남루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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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부사의 절세가인 외동딸 아랑은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관노에게 살해되고 시신은 누각 아래 대숲에 버려진다. 이후 밀양에 부임한 부사마다 첫날 밤에 죽어 나가고 마을에 우환이 돈다. 이 소식을 듣고 자청해 부임한 간 큰 부사가 밤에 귀신으로 나타난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원혼을 풀어 준다. 밀양 아리랑의 원류로 전해지는 ‘아랑 설화’의 대강이다. 이를 모티브로 드라마 ‘아랑 사또전’과 영화 ‘아랑’이 만들어졌고 김영하는 ‘아랑은 왜’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랑 설화의 배경 무대가 바로 밀양 8경 중에서도 으뜸인 영남루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의 3대 명루로 꼽히는 목조 건축물이다. 신라 경덕왕 때 영남사의 부속 누각으로 지었는데 사찰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은 것을 고려 공민왕 때(1365년) 김주가 다시 짓고 영남루라 칭한 것이 관영 누각의 시작으로 알려진다. 전란과 화재로 몇 차례 소실됐다 1844년 중건된 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영남루다. 건물 좌우에 침류당과 능파당이라는 부속 건물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누각 배치의 완결을 보여 준다는 건축사적 의미도 있다는 평가다.

영남루를 휘돌아 밀양강이 흐르고 하늘과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답다. 가을을 물들이는 단풍과 어우러지는 풍광은 밤낮을 달리하며 운치를 더한다. 당대의 문필가와 대문장가들이 영남루를 찾아 시문을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전성기 영남루에 걸린 편액만 3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구한말 추사체의 대가 성파 하동주가 쓴 현판을 비롯해 누각 천장으로 퇴계 이황, 목은 이색, 삼우당 문익점 등이 남긴 시문들이 즐비하다. 고려시대에는 정지상이 한시 ‘영남사루’를 통해 영남루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야경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이 28일 삼척 죽서루와 함께 영남루(현 보물 147호)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영남루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해방 후인 1955년 국보로 승격했다. 그러나 1962년 1월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재평가하면서 다시 보물로 바뀌었다. 이번 국보 지정 예고로 60여 년 만에 국보로 재평가받는 셈이다. 그동안 밀양시와 시의회를 중심으로 영남루의 문화재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아랑의 원혼이 풀리듯 밀양 시민들의 염원이 국보라는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영남루의 가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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