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산은 ‘희망고문’에 물 건너간 통합 LCC 부산 유치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장기화
EU, 내년 초쯤 ‘결합 승인‘ 전망
미국·일본 설득에 수년 소요될 듯
에어부산 인력 유출 경쟁력 약화
“티웨이항공에 시총 역전 당해”
산은 “분리 매각 없다” 입장 불변
에어부산 대주주단 독자생존 모색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이 결국 해를 넘기면서 통합 LCC(저비용항공사) 본사 부산 유치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됐다. 부산에서는 기업결합 추진 초기에 국토부와 산업은행의 말만 믿고 통합 LCC 부산 유치라는 ‘희망고문’에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원망이 쏟아진다. 부산시와 지역 상공계를 중심으로 늦게라도 거점 항공사인 에어부산의 독자생존을 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지부진 합병, 숨넘어가는 에어부산
아시아나 이사회는 한 차례 파행을 겪은 끝에 2일 화물 사업부의 분리매각을 가결했다. 대한항공은 여기에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의 여객 노선을 티웨이항공에 양도하는 내용을 보탠 시정조치안을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EU는 일러야 내년 초 양사 기업결합을 승인할 전망이다. 거기다 차순으로 남은 미국과 일본은 한층 더 까다로운 요건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최종 결합까지 수년간 험난한 여정이 남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부산의 거점 항공사인 에어부산의 체력이 그 기간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채권단의 부채비율 관리 방침에 항공기 추가 배치 등이 무산됐고, 박봉에 시달리던 핵심 인력이 경쟁 LCC로 빠져나가며 경쟁력은 약화일로다. 지난달 초부터 아시아나 이사회에서 화물 사업부 매각안이 가결되던, 되지 않던 통합 LCC 부산 유치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그 사이 인천공항과 대구공항을 거점으로 한 경쟁 LCC는 체급을 한껏 키우는 중이다. 오미크론의 급습으로 2022년 바닥을 친 LCC 업계는 엔데믹 이후 관광 수요에 힘입어 1년 사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대구로 본사를 옮긴 티웨이 항공은 2019년만 해도 에어부산보다 시가총액이 1000억 원 이상 낮았지만, 한 해 만에 30% 가까운 성장으로 에어부산 시총을 단숨에 역전했다. 제주항공도 2022년 4961억 원으로 부진했던 시총이 올해 10월 현재 8130억 원으로 뛰었다. 제주항공의 시총은 에어부산의 배가 넘는다.
■국토부·산업은행 “분리매각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 시작 당시만 해도 LCC를 통합해 지방공항을 기반으로 활동하게 하겠다던 게 산업은행이었다. 그러나 부산 상공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에어부산이라도 생존시켜야 한다’며 별도의 조치를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아시아나의 매각이 매끄럽게 이뤄져야 회생에 투입된 3조 원 넘는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도 산업은행은 에어부산의 독자생존이나 플랜B에 대한 문의에는 입을 닫고 있다.
거점 항공사가 쇠락하면 월드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애써 이끌어낸 2029년 가덕신공항의 조기 개항도 빛이 바랜다. 당장 공항이 문을 열어도 이를 모항으로 삼아 서비스를 제공할 항공사가 사라진 ‘빈껍데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는 통합 LCC와 관련된 국토부의 입장 변화에서부터 이미 예견됐다. 2020년 기업결합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통합 LCC는 지방공항을 기반으로 영업할 것이라던 국토부는 이제 민간 기업의 본사 위치는 기업이 결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세를 바꿨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합 LCC 본사를 어디 두든 영업에서는 차이가 없고 현재로서는 그에 대한 논의는 없다”면서 “기업 결합이 완결되면 2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그때 가서 다시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한편, 에어부산 지역 대주주단은 지난주 부산시와 비공개 회의를 갖고 항공사 독자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들은 회의에서 지역 기업 외에도 역외 대기업 자본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분리매각 추진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에서는 박형준 시장에 에어부산과 관련한 현황 보고도 이뤄졌다. 부산시는 “그간 분리매각과 관련해서는 국토부와 산업은행의 입장 변화가 없었지만 아시아나 화물사업부가 분리매각 되면서 마찬가지로 에어부산도 분리매각을 요구할 수 있게 상황이 바뀌었고,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