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겨우 찾은 거제시 보건소장… 넉 달 만에 사표 왜?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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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 치료제 치매 환자 처방 논란
사의 표명에 따른 면직 절차 진행
공공의료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거제시보건소. 부산일보DB 거제시보건소. 부산일보DB

경남 거제시가 어렵게 영입한 의사 출신 보건소장(부산일보 5월 25일 자 2면 등 보도)을 임용 4개월 만에 면직하기로 했다. 치매 환자 치료제를 둘러싼 소장과 직원 간 갈등이 곪아 터진 탓이다. 당장 후임자 인선도 쉽지 않아 공공의료 수장 공백이 또다시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거제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보건소장 A 씨 ‘직위해제’ 안건을 의결했다. 보건행정 총괄자로 직무수행이 부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결과를 통보받은 A 소장은 이의 제기 없이 곧장 사표를 제출했다. 시는 사의 표명에 따른 ‘의원면직’ 절차를 밟고 있다. 시 관계자는 “관계 기관에 (면직) 제한 사유가 없는지 확인을 요청했다”면서 “답변이 오면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인사위 회부 사유에 대해선 “개인 신상과 관련된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A 소장은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지난 7월 개방형직위 2차 공개모집을 통해 거제시보건소장에 임명됐다. 전국을 통틀어도 흔치 않은 엘리트 의사 소장에 안팎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업무 개시 두 달도 안 돼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거제시치매안심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A 소장이 나병(한센병) 치료제인 ‘답손(Dapsone)’을 치매 환자에게 처방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다.

센터에선 그동안 치매 치료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아리셉트(Aricept)’를 써왔다. 그런데 A 소장이 이를 답손으로 대체하자 보건소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거제시공무원노조 게시판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A 소장은 해당 게시물에 직접 답글을 달며 설전을 벌였다. 그는 아리셉트는 치매 증상만 다소 개선할 뿐 치료 약이 될 수 없고 폐질환 등 부작용이 더 많지만, 답손은 인지기능 개선 및 치료약물로서 효능이 연구로 입증된 데다 지인과 모친에게 투약해 실제 치료 효과까지 직접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또 부작용 모니터링을 통해 기존 약물 부작용이 확인된 환자에게만 답손을 치료제로 대체했다며 정당한 의료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직원들은 임상 등 검증이 미흡한 약제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보통 부작용이 있으면 보건복지부에 고시한 약제 중 환자에게 맞는 다른 약을 주는데, 답손은 목록에 없다는 것이다.


거제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 올라온 답손 논란 게시물. 보건소장이 직접 답글을 남기며 설전을 벌였다. 홈페이지 캡처 거제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 올라온 답손 논란 게시물. 보건소장이 직접 답글을 남기며 설전을 벌였다. 홈페이지 캡처

논쟁이 가열되자 뒤늦게 거제시가 진화에 나섰다. 시는 지난 9월,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에 답손 처방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다. 그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A 소장의 자진 사퇴로 논란은 일단락되게 됐지만 지역 공공보건의료행정은 또다시 긴 공백기를 맞게 됐다. 현행 지역보건법상 의사 면허가 있어야 보건소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 의사 소장을 영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에 업무 강도는 높기 때문이다.

지역 의료 서비스 종합계획 수립과 보건 교육, 지역민 예방 접종, 보건 의료 증진과 연구 등을 수행하는 보건소장은 환자 진료는 물론, 행정 업무도 봐야 한다. 일반 병의원에 비해 업무량이 많고 부담도 크지만, 급여는 공무원 수준에 그친다. A 소장 역시 지방공무원 4급 상당으로 연봉 8386만 원 조건이었다. 억대 연봉이 예사인 현직 의사 입장에선 굳이 지원할 이유가 없다.

다만 2차례 이상 공모를 진행했는데도 지원자가 없으면 간호·의무·의료기술·보건진료 분야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최소 5개월 이상을 허비해야 한다. 거제시 관계자는 “후임자 선정 과정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향후 공모 일정 등은 현재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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