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빵 과장' '라면 사무관'
2012년 1월 3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배춧값이 1만 5000원~2만 원이면 20달러라는 이야기인데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며 국무위원들을 질타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물가가 4%대로 치솟자, 특단의 대책을 지시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물가관리책임실명제’다. 품목별로 물가 상한선과 담당 공무원을 정해 관리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에는 배춧값이 오른 건 4대강 사업 때문인데 애먼 공무원만 잡는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치솟는 물가는 서민 경제 최대의 적이다. 심할 경우 정권의 안위도 위협한다. 물가 잡기가 국가적 화두가 되는 이유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물가 상승 압력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동성 공급이 확대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각종 신조어가 일상이 된 게 지금의 현실이다. 에그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 슈거플레이션…. 가격은 유지하되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끈적하게 질긴 스티키 인플레이션까지 등장했다.
정권 출범 당시부터 윤석열 정부를 괴롭혀 온 것도 고물가였다. ‘민생은 파탄 지경인데 정쟁으로 날 샌다’ ‘이념 논쟁 중단하고 민생부터 살펴야 한다’는 말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서민 경제의 시름이 깊어진 까닭이다. 기획재정부는 10월부터는 물가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지만 빗나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식품류·비주류 음료 물가가 5.1% 상승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5%대를 넘겼다. 음식 서비스 물가는 6.4% 올랐다. 우유 가격은 14.3%나 올라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농림축산식품부는 라면,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설탕, 우유 등 서민 식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과 원재료 7개 품목에 대해 전담자를 지정해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빵 과장’ ‘라면 사무관’이 생기는 것이다. MB 정부 시절의 ‘쌀 실장’ ‘기름 실장’이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 기업을 압박해도 인플레이션 기조가 이어지는 한 물가 상승을 막기는 어렵다는 회의적 반응이다. 하지만 소줏값까지 7000원 목전이라 소주 한잔에 시름을 달래기도 어려워진 서민들 입장에서는 때려잡아서라도 물가를 좀 잡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