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즌 2’는 주민을 위하여
원도심 협의체 “전격 추진” 한 목소리
주민 소외 없는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부산 원도심 기초지자체 모임인 ‘산복도로 협의체’가 6일 정기회의에서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즌 2’ 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낙후된 원도심과 산복도로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이미 10년간 8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즌 2’는 이런 반성에서 출발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의 성과 뒤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그러니까 각종 문제점과 보완점에 대한 철두철미한 분석이 그것이다. 명확한 방향과 제대로 된 준비가 없다면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뿐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2011년 시작된 일종의 도시재생 사업이다. 피란수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복도로 문화자산을 활용해 지역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하지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볼거리나 먹거리 콘텐츠 개발에만 치중한 나머지 주민 생활 개선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당초 예상했던 주거환경 개선이나 생활 편의의 질적 변화보다는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에 따른 주민 불편과 관광객과의 갈등만 심화됐다는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산복도로가 전국적인 문화 관광지로 자리 잡은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성과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산복도로 사업의 이런 어긋난 방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들을 산복도로에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 이 일대는 공·폐가가 꾸준히 늘고 있고 20·30대 젊은 인구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버린 상태다.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주민 인구가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진 걸 확인할 수 있는데, 도시재생 사업과 주민 소외·이탈 사이의 연관성 말고는 달리 근거를 찾기 힘들다. 2021년 부산연구원 보고서도 ‘산복도로 사업에서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분석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주민 의견이 배제되니 거점 시설도 외면받는 건 당연하다. 거점 시설은 산복도로의 개성을 살린 창작품을 만드는 공간 등을 가리킨다.
산복도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주민들의 삶이 공간에 녹아들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복도로가 되레 주민들을 내쫓는 상황이라면 존재 가치가 있는 걸까. 관광에 방점을 찍느라 지역 주민의 삶에 무심했던 기존 사업은 반성과 함께 대폭적인 시각 수정을 필요로 한다. 세계의 도시재생 성공 사례를 보면, 주거환경 개선과 의견 반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산복도로 시즌 2’가 진정 필요하다면 새로운 방향을 찾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부산시의 적극적 관심과 재정 지원, 관련 지자체들의 상호협력을 아우르는 장기적 안목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