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흩어져야 산다, 분산에너지법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지역 생산 에너지 지역서 소비 취지
기업 이전 유도해 지방 활성화 기대
탄소 중립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법
지난 6월 국회에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이 통과되어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분산에너지법은 지방에서 거대한 발전소를 돌려 전기를 대량으로 수도권에 공급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체, 주거지 등 전력 수요가 많은 지역 인근에 태양광·풍력 발전소,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을 건설하여 지역 내 에너지 판매를 활성화하자는 법이다. 매년 전력설비 신설·보강 등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한국전력의 경영 정상화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법안이다.
분산에너지법의 핵심은 지역별 차등전기요금제도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전력 소비량은 부산의 2배가 넘는다. 반면 전력 생산은 부산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 우리나라 첨단산업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역시 전력 소비량이 발전량보다 2배 정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은 지방이나 수도권이나 모두 똑같다. 이러한 오래된 에너지 수급의 근본적 모순을 바로잡자는 취지가 바로 차등전기요금제이고 분산에너지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분산에너지법의 본질을 불공평한 지역별 전기요금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분산에너지법의 가장 큰 취지는 OECD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빠르게 끌어올려 당면한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있다.
사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빠른 속도로 늘었고 급기야 설비용량 기준으로는 원전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문제는 발전량이다. 근본적으로 재생에너지는 변화무쌍한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식이기에 효율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투자한 설비에 비해 그 효율이 너무 낮다. 전문가들은 (석탄)화력과 원자력 발전 등으로 포화된 송·배전망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기존 전력으로 포화된 송전선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애써 지역에서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전기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흐르지 않으면 열을 발생시켜 송전선을 망가뜨리게 되고, 과잉 전력생산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출력제한 조치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송전망을 확충해 에너지 사용이 집중된 수도권으로의 전달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을 지역으로 이전해 현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지역에 공장을 새로 짓는 것보다 송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송전선 건설 반대 여론이 높은 데다, 가뜩이나 적자로 허덕이는 한국전력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송전선 건설을 맡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지역에서 다 소모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분산에너지법이 성공을 거둬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국가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전기시대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성공해야만 대한민국은 에너지 대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 수도권만을 향한 발전을 고집하는 것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빠르면 올해, 늦어도 2025년에 최고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기후협약이 선언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배출량이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소식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인류가 비로소 ‘탄소 중립 2050’으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선에 섰음을 의미한다. 탄소 중립의 길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도 문제를 쪼개어 작은 문제들로 만들고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이 지역경제 발전과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이루어 낼 수 있는 분산에너지법의 제대로 된 준비와 이행이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분산에너지법의 세부 조율에 있어 정부 부처별로 이견이 생기고 있다. 국가 전력망을 새로이 손질하는데 어찌 이견이 없을까. 정부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여러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할 것이다. 분산에너지법이 씨앗이 되어 에너지 대전환의 첫 단추가 잘 꿰어지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