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용 신발 신고 공차는 여자들 [골 때리는 기자]
K리그 관중 수가 올 시즌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다. 주목할 점은 여성 관객의 비율의 절반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 공을 차는 여성들도 늘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여자축구 동호회 수는 총 148개로 2019년의 125개보다 18% 늘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따른 축구흥행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도 한몫한 듯 보인다. 특히, 축구보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풋살을 즐기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
우연한 기회에 벌써 공을 찬 지 1년이 다 돼 간다. 실력이 없을수록 장비 탓을 하기 마련. 초록 잔디, 유니폼과 잘 어우러지는 화려한 디자인의 풋살화를 사고 싶었다. 유명 스포츠 매장 5군데를 돌았지만, 맞는 신발은 없었다. 보통 구두나 운동화를 살 때 240~245mm 사이즈의 신발을 구매한다. 방문한 매장의 직원은 "여성들이 보통 240mm 사이즈를 가장 많이 찾지만, 여성들에게 맞는 풋살화가 잘 없어, 보통 아동용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같이 공을 차는 언니, 동생들도 모두 풋살화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아동용 가장 큰 사이즈는 240mm 정도다. 그렇다고 240mm을 신는 여성들에게 아동용 같은 사이즈는 작다. 성인 풋살화의 경우도 운이 좋으면 해당 사이즈를 구할 수 있지만, 없는 경우가 많고 같은 사이즈가 있는 브랜드라도 여성에겐 조금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아동용 가장 큰 풋살화를 사서 신었다. 디자인이 단순했고, 발이 너무 꽉 끼었다. 남성들의 신발과 비교해 덜 프로(?)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어떤 아동용 풋살화는 밸크로, 일명 찍찍이인 경우도 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찍찍이 운동화를 신고 피치에 서자니, 영 폼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찍찍이는 포기했다.
진짜 문제는 사이즈가 너무 작아 공을 찰 때마다 발가락이 아프다는 점이다. 발톱이 여러 번 빠지기도 했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우스갯소리로 축구를 하는 여성들 사이에선 아예 '왕발'이거나 '아기발'이어야 신발을 사기 편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서양 브랜드들의 풋살화는 발볼이 좁아 아시아 여성의 발에는 더욱더 맞기 어렵다. 아동용 풋살화를 신다가 최근에야 아시아인의 발에 잘 맞는 일본 브랜드의 상품을 직구를 통해 비싸게 구매해 신고 있다.
여성들이 '골 때리기' 어려운 이유는 신발만은 아니다. 풋살, 축구장에는 남·여 탈의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는 곳이 많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서 갈아입거나, 운이 좋지 않으면 상의 탈의를 한 남성들과 마주치는 어색한 상황도 벌어진다.
스포츠 흥행은 손흥민과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가 한두 명 나온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즐겨야 그 저변도 넓어지는 법이다. 지난해 한국 여자축구 전체 등록 선수는 1400여 명이다. 반면 일본은 80만 명이 넘어간다. 선수가 많은 만큼 팀 수도 압도적이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풋살화의 선택지도 많은 편이다. 성별을 떠나 그 누구나 공을 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손흥민, 지소연 같은 선수도 더 자주 나오지 않을까. 여성에게도 축구를 허하라!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