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비상하는 내성천에서 새해 행운의 정기 온몸에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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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
비룡산 전망대서 용틀임 한눈에
하트 모양 착안 백년해로 자물쇠

임시 철판 놓은 뿅뿅다리 건너면
평화롭고 안온해 공원 같은 마을
주변산책로·백사장 걷기에 최고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는 용의 해다. 희망을 안고 승천하는 용처럼 모두 활활 날아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용의 의미를 담은 여행지를 다녀왔다. 용궁면, 비룡산, 회룡포, 회룡대, 용암대 등 모든 이름에 ‘용’이라는 단어가 선명한 곳. 용의 기운이 가득한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이다.

비룡산 회룡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 전경. 구불구불한 물굽이가 용틀임하는 형상이다. 남태우 기자 비룡산 회룡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 전경. 구불구불한 물굽이가 용틀임하는 형상이다. 남태우 기자

■회룡포전망대

‘회룡포(回龍浦)’는 마치 ‘육지 속의 섬’ 같은 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용이 비상하면서 내성천을 휘감아’ 도는 데다 나머지 한 쪽은 산으로 가로막혔기 때문에 강물과 산 사이에 갇힌 것이다. 용의 해를 맞아 용의 정기를 받으러 간 것인 만큼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러려면 곧장 회룡포로 가서는 안 된다. 용이 날아오르는 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인 회룡대로 달려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회룡포전망대’ 또는 ‘예천 장안사’를 입력하면 된다.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인 장안사 주차장이다. 여기서 400m 정도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장안사에서 전망대까지 길은 그야말로 ‘용의 길’이다. ‘용’의 이름을 단 각종 시설이 연이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룡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두 노인이 지친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내려오고 있다. 남태우 기자 비룡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두 노인이 지친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내려오고 있다. 남태우 기자

장안사가 자리를 잡은 곳은 ‘용이 날아 오른다’는 뜻의 비룡산 중턱이다. 1759년에 만든 장안사 극락전 상량문에는 ‘비룡이 꿈틀거리는 산마루 천상의 정기 서린 곳’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앞에는 조그마한 암자와 큰 바위가 보인다. 신라 경덕왕 때인 759년 창건된 ‘용왕각’과 구름에서 노니는 용의 형상이 새겨진 ‘용바위’다. 한 부부가 바위에 달라붙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위에 동전을 붙이려고 한다. 이곳에 동전을 세워서 붙이는 데 성공하면 큰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한 부부가 행운을 빌며 용바위에 동전을 붙이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부부가 행운을 빌며 용바위에 동전을 붙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총 223개인 나무계단을 다 오르면 길 끝에 인연을 ‘맺을’ 수 있게 자물쇠를 묶을 수 있는 삼각뿔 철제 구조물이 보인다. 비룡산은 하트 모양이어서 ‘사랑의 산’으로도 불린다. 실제로 비룡산을 지도로 살펴보면 하트 모양처럼 보인다. 산의 왼쪽 부분은 총각을 상징하는 좌청룡, 오른쪽 부분은 처녀를 상징하는 우백호라고 한다. 이곳에서 젊은 남녀가 인연을 맺으면 행복하게 백년해로한다고 전해진다.

삼각뿔 뒤에는 회룡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정자이자 전망대인 ‘회룡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회룡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전망대 위가 아니라 바로 아래다. 난간에 서서 발아래를 바라보면 위초하 시인 표현대로 ‘물너울이 용틀임을 하는’ 회룡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마을이 마치 섬처럼 산책로를 따라 둥글게 숲으로 에워싸였다. 숲 바깥은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만든 노란색 강모래가 둘러쌌다. 글자 그대로 ‘엄마야 누나가 강변 살자’가 펼쳐진 셈이다. 마을 한쪽에 가옥 십여 채가 옹기종기 모였고, 반대편에는 농사를 짓는 듯 너른 농토가 펼쳐졌다.

행복한 백년해로를 보장한다는 삼각뿔에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렸다. 남태우 기자 행복한 백년해로를 보장한다는 삼각뿔에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렸다. 남태우 기자

난간을 붙잡고 서서 한참동안 포근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회룡포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올해 바라는 소망을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읊어본다. 그 내용은 물론 비밀이다.


■회룡포마을

회룡포전망대에서 내려와 차를 몰고 먼저 회룡포마을로 간다. 관광객이 꽤 많은 듯 상당한 규모의 주차장이 마련됐다. 회룡포로 가려면 이곳에 차를 세우고 작은 다리를 이용해 내성천 여울을 건너가야 한다. 강이 깊지는 않지만 발을 적시지 않으려면 다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

원래는 나무다리였는데 예천군청이 1997년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구멍 뚫린 철판인 철발판을 이용해 임시 다리를 놓았다. 구멍 사이로 물이 퐁퐁 솟아오른다고 해서 주민들은 ‘퐁퐁다리’로 불렀지만 나중에 신문, 방송에 ‘뿅뿅다리’로 보도되는 바람에 지금은 뿅뿅다리로 이름이 굳어졌다.

회룡포를 둘러본 두 남녀가 뿅뿅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남태우 기자 회룡포를 둘러본 두 남녀가 뿅뿅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사실 뿅뿅다리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같이 낭만적이지도, 건너다니는 재미도 찾아볼 수 없다. 단순히 공사장에서나 쓰이는 철판을 설치한 이색적인 다리라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회룡포에서 인상적인 것은 놀라우리만치 평화롭고 안온한 이곳의 분위기다. 또 다른 농촌체험마을과는 달리 숲으로 조성한 주변 산책로와 두 곳의 작은 공원 그리고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우는 꽃 공원, 1년 내내 농사를 짓는 농토 등이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잘 꾸며졌다는 사실이다.

두 노인이 회룡포 주변 산책로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두 노인이 회룡포 주변 산책로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은데도 회룡포를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도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돼 완벽하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깊이 든다. 그리고 양말을 벗어 두 손에 들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어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맨발로 걷기가 유행이라는데 이곳 모래사장이야 말로 맨발로 걷는 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한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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