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듀! 보신탕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04년 미국 미주리주립대 미국탐사보도기자협회(IRE)에서 1년 반 동안 연수할 때였다. 당시 기자 가족의 호스트 역할을 맡았던 기자협회 제프 포터 사무국장 집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곤 했다. 제프 국장 부부는 집에서 키우는 구리색 빛깔의 잡종견 테스와 미니어처슈나우저종인 콘웨이 2마리를 감싸 안으면서 “비상식량이 아니다”라는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기자는 “가족은 먹지 않는다”라며 받아쳤던 기억이 있다.

2000년 세계 16개국 기자들과 함께 미국 정부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3주를 여행하면서 친해졌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시사주간지 압둘 편집국장은 “한국인들이 사우디 건설 현장에 캠프를 차리면 몇 달 사이에 마을 들개가 사라지고, 1년 있으면 개를 키우고 있더라”는 경험담을 농담 삼아 들려줬다. 사우디 사람들의 눈에 비친 70~80년대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던 ‘보신탕 등 개 식용’ 논쟁이 9일 자로 막을 내렸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찬성 208인, 기권 2인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생명 존중과 사람 및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동물보호의 가치 실현에 이바지하는 게 법 제정 목적이라고 한다.

개와 고양이 등을 가족으로 여기면서 ‘펫 보험’ ‘펫 상조’ ‘펫 장례식장’ ‘펫 놀이터’ ‘펫 수영장’ 등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문화가 확산하는 추세에서 몸보신을 위해 보신탕을 먹는 문화가 상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602만 가구로 전체의 25.4%.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상황에서 ‘점심에 보신탕 한 그릇’ 운운했다가는 ‘야만인’이란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관련 산업 규모도 2022년 8조 원에서 2027년에는 15조 원까지 예상돼 ‘개고기 옹호론’이 더 이상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것이다.

물론 반려동물에 부정적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반려견의 공격에 따른 신체적 손상 등에 대한 민형사적 책임, 막대한 펫 관련 의료비 표준화, 유기견 문제까지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쌓여 있다. 모쪼록 개 식용 논쟁의 종식에 따라 한국 사회가 반려동물과 함께 한층 진일보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주말에는 촌집 장독대를 지키고 있는 시고르자브종 대나 간식부터 챙겨야겠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