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한동훈의 '동료 시민'이 성공하려면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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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아바타' 이미지 벗고 통합 리더십 보여야

통치 대상 아닌 책임 있는 '시민'
보수 정당이 ‘능동적 역할’ 소환

수직적 당정 관계 개선 외면하고
'김건희 특검', 대통령 설득 못 해
"민주주의 없다" 내부 자성 무시
야당 비판·카르텔 탓만 열 올려

증오 극단화 갈라치기 그만하고
함께하는 정치에 명운 걸기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할리우드 SF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는 미래의 ‘지구연방’이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 종족과 벌이는 사투를 다룬다.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건 ‘지구연방’이 계층 사회라는 점이다. 시민(Citizen)만 우주를 종횡무진하는 전투에 참가할 수 있다. 투표와 공직 진출 등 공적인 일은 시민, 즉 예비역의 전유물인 데 반해 민간인(Civilian)은 공론에 참여할 모든 권리가 박탈되어 있다. 국민을 시민과 비(非)시민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미래를 파시즘 사회로 상정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단순한 SF 활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국민과 시민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22대 총선 앞의 최대 풍운아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검사에서 법무부 장관을 거쳐 집권 여당을 지휘하는 자리까지 2년이 안 걸렸다. 한 위원장은 정치 무대에 등장하면서 ‘동료 시민’이라는 낯선 개념을 들고 나왔다. 누가 ‘동료 시민’이고 누구는 아니냐는 비판적인 반응도 있다. 어쨌든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어장 관리’를 하면서 외연 확장 전략을 썼던 기존 정치권의 화법과 다르고 능동적 시민의 역할을 소환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민의힘’이지 ‘시민의힘’이 아닌 까닭

미국 대통령 연설문의 서두는 으레 ‘My fellow citizens(Americans)’로 시작한다. 보통 ‘국민 여러분’으로 번역되는데, 이 표현이 ‘동료 시민’의 원형으로 보인다. 한국어에서는 국민과 시민을 구분해서 사용하니, ‘동료 시민’은 서로를 평등한 구성원으로 여기고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읽힌다. 위정자가 주권자를 통치 대상으로 볼 때 ‘국민’이 사용된 반면, 의기투합하는 대상으로 존중할 때 ‘시민’이 호명된다는 뜻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으로 칭하며 역할을 주문했을 때와 같은 맥락이다. 이게 공화정의 원리에 맞고 협치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정치 국가와 시민 사회는 길항 관계였다. 국가 통제가 시민 사회를 움켜쥔 곳, 즉 국가도(Stateness)가 높았던 과거 소련과 군국주의 일본, 현재 북한에서 시민 사회는 존재감이 없다. ‘국민’은 군주나 당의 지배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을 강제 암송해야 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시민 사회가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투쟁 끝에 목소리를 낼 공간을 확보하는 정도에 따라 민주화의 성패가 갈렸다. 한국 시민 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민 사회의 대척점에 있었던 보수 정당의 적자가 ‘국민의힘’이지 ‘시민의힘’이 아닌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그런데 시민 역할론의 기치를 보수 여당의 구원 투수가 꺼내 들었다. 혼돈 끝의 ‘비상 대책’으로 나온 것이긴 해도 그 자체는 시대의 변화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0일 오후 부산을 방문한 한 위원장이 부산 동구 아스티호텔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 미래 일자리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박형준 부산시장의 발언을 듣는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10일 오후 부산을 방문한 한 위원장이 부산 동구 아스티호텔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 미래 일자리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박형준 부산시장의 발언을 듣는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동료 시민’ 대 ‘패거리 카르텔’

한 비대위원장은 586세대(80년대 학생 운동권)와 민주당을 싸잡아 수구 기득권이라고 비판한다. 586이 민주당을 ‘숙주’로 이용하고 있다거나, 강성 지지층을 뜻하는 용어인 ‘개딸’을 인용해 “민주당이 개딸 전체주의가 됐다”고 민주당을 공격한다. 나아가 이런 민주당이 “동료 시민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며 척결의 대상이라고 좌표를 찍는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을 789세대(70, 80, 90년대 생) 위주로 채우고 세대 대결 프레임까지 노린다.

‘개딸 전체주의’ 화법은 곧바로 한 위원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국민의힘 초선 김웅 의원의 불출마의 변에 한 위원장이 답해야 할 질문이 들어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적 정당이 아니다. 당이 갈 곳이 대통령의 품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로 압축되는 대통령실의 당 장악이 전체주의적인 구태가 아니고 뭔가. 한 위원장이 수직적 당정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으니 촉망받던 초선 의원이 절망하는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을 대하는 모습도 의문 투성이다. 두 번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 대표, 젊은 세대에 지지세가 있는 당의 자산이 탈당하려는데도 만류하기는커녕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비대위를 굳이 789세대로 내세운 취지가 무색해졌고, 민주당을 탈당한 5선의 이상민 의원을 직접 영입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과도 엇박자가 난다.

한 위원장의 인식은 윤석열 대통령의 ‘패거리 카르텔’ 척결론과 맞닿아 있다. 이권 카르텔로 지목된 곳은 586뿐만 아니라 건설 현장이나 학원가, 대학과 연구소의 R&D 분야 등 전방위적이다. 그런데 시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대목이 있다. 군부 카르텔 하나회가 사라진 뒤 가장 위력적인 악폐 카르텔은 법조계에 있다. 검찰과 법원의 고위직이 퇴임 후 거액의 몸값을 받고 기업과 로펌으로 옮기는 전관예우 관행이 그것이다. 법조계 전관예우는 ‘패거리 카르텔’이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언론과 야당, 시민 사회와 불통의 벽을 쌓고 있다. 대통령실은 수직적 당정 관계를 통해 집권 여당을 쥐락펴락해 왔다. 이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동료 시민’의 미래를 위협하지 않는가? 한 위원장은 대답할 의무가 있다.

■‘윤석열 아바타’ 탈피, 통합의 정치 나서야

비대위원장 수락 때 운동권 야당을 향한 전투 태세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뜨악했다. 민주당의 허물만 보고 정치를 하면 당장 전선은 명확하겠지만 미래가 없다. 집권 여당을 이끌게 되었으니 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지 않았을까?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입장도 처음엔 고심하는 듯하더니 대통령실 거부 방침이 나오자 설득을 포기하고 불가 방침을 굳혔다.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아냥을 자초하고 만 셈이다. 뉴라이트를 넘어서는 ‘영 라이트’나 ‘넥스트 라이트’라는 기대감이 무색하다.

전신인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을 치를 때를 복기해 보라. 청와대의 공천 개입이 거세지자 참다 못한 당시 김무성 대표는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잠행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 파문이다. 선거 결과 제1당 자리는 잃었지만 당에서 그 정도라도 저항한 덕분에 ‘폭망’을 피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술 안 마시는 윤석열’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차별화 말고 아바타 그림자를 확실히 걷어내야 당도 살고 대통령도 산다.

집권 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야당 지도자의 목숨을 노린 정치 테러가 발생한 작금의 정치 현실에도 무거운 책임이 있다. 원인은 누구나 알듯 증오의 극단화다. 언제부턴가 여의도에는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하는 진영 논리만 횡행하고 통합의 가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우리 민주공화정은 모두가 ‘동료 시민’이다. ‘동료 시민’의 미래를 위협하는 진짜 적은 ‘동료 시민’을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려는 세력이다. ‘동료 시민’ 구호를 갈라치기의 도구로 쓸 것인가, 함께하는 통합의 정치에 활용할 것인가. 정치인 한동훈의 명운이 걸려 있는 갈림길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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