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 풀코스'를 위하여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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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공공기관 부산 이전 10년이 흘러도
외지 직원들에 부산은 ‘평일 업무용 도시’
의료 교육 생활 인프라 등 정주환경 개선해
모든 것 갖춘 글로벌 허브도시 거듭나야

“친구야, 언제 부산 한 번 내려와라, 풀코스로 ‘찐득’하게 대접할게.” “김 병장님, 다음에 사회에서 만나면 제가 ‘부산 풀코스’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부산에 사는 남성이라면 한 번쯤 타 지역 친구나 군대 선·후임을 부산으로 초청하며 해봤음직한 말이다. ‘부산 풀코스’는 분명 회자된 적은 많지만 그 누구도 실체와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는 ‘도시전설’처럼 전해오는 말이다. 같은 관광 도시라 해도 ‘제주 풀코스’나 ‘경주 풀코스’ 같은 말이 없는 걸 보면, 대한민국 제2 도시이면서도 해운대나 광안리 해변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즐길 거리가 즐비한 부산만의 자부심이 반영된 말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서면이나 연산동 같은 전국구 유흥가도 갖췄다는 점에서 ‘부산 풀코스’에 초대 받은 타지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뼈와 살이 타는 밤’을 기대하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부산행 열차에 올랐음직하다.


부산 초청에 응한 타지인들의 ‘풀코스 경험담’을 재구성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부산역에 내린 뒤 국제시장에서 어묵과 씨앗호떡으로 애피타이저를 시작한 뒤 광안리 회센터에서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회 한 접시를 곁들여 ‘대선소주’를 마신다. 이어 사직구장에서 롯데 야구를 직관하며 ‘봉다리 응원’을 펼치다 패전의 쓰라림을 삭이기 위해 오뎅탕에 소주를 들이붓는다.

“도대체 이놈의 풀코스 메인은 언제쯤 시작되나” 의문이 계속될 쯤 취기를 못 이겨 해운대 숙소에서 잠에 곯아떨어지면서 화려한 부산의 밤은 저물어간다. 다음 날 느직이 소주에 돼지국밥으로 해장을 하고,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에서 군만두나 밀면을 먹는 것으로 1박 2일의 부산 풀코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서울행 기차에 오르며 “잘 먹고 간다”며 감사 인사를 건네면서도 내심 “이러려고 불렀나”하는 실망감이 떠나지 않는다. 초청한 부산 사람 입장에서는 기껏 아까운 시간과 돈 들여 대접하고도 좋은 소리는 못 듣는 셈이다.

과거 부산도, 부산 사람도 잘 나가던 시절에는 풀코스가 말 그대로 외지인들이 부산에서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부산의 주력 산업이 쇠퇴하고, 부산에 남아 있는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도 곤궁해지면서 ‘부산 풀코스’의 명성도 퇴색하고 말았다.

거칠게 보면 대한민국 안에서 부산의 위상과 타 지역민 평가가 그렇다. 공공기관 직원들을 부산에 정착시키기 위해 원가에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공급해주고, 각종 생활 편의를 봐줘도 한사코 부산 정주는 거절한다. 2014년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 금융 공기업들이 부산으로 이전한 지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금요일 저녁만 되면 부산역은 가족이 기다리는 서울로 올라가려는 이들 기관 직원으로 북새통이다.

대통령이 조속한 이전을 지시하고, 여당이 입법에 나서도 산업은행 본사 직원들은 야당을 방패막이 삼아 기를 쓰고 부산으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현행 법 체계에서 가능한 각종 지원과 행정 편의를 봐주며 부산 투자를 요청해도 “뭐 더 없느냐” “이러려고 부산으로 오라고 했느냐”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다. 지난 2일 부산에서 피습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 의료진의 만류에도 한사코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은 것처럼, 부산이 아무리 비수도권 중에서는 ‘최고 도시’라 해도 수도권 사람들에게는 한낱 ‘지방’이자 ‘2등 도시’일 뿐이다.

갑갑하고 속상한 일이지만, 결국 부산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자존심을 앞세우기에는 하루하루 소멸로 치닫는 부산 현실이 너무도 절박하다.

그런 면에서 부산시가 올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허브도시 도약’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특례 적용을 골자로 하는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발효되면 부산은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사람과 기업, 자본이 몰려드는 국제적인 비즈니스·관광도시로 변모할 수 있다.

특히 병원과 학교라는 삶의 질과 직결되는 양대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보강하면 부산의 정주환경을 한 차원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영어 상용화와 무비자 입국으로 외국인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국제도시를 만들고, 유수의 해외 교육기관과 특수목적고가 들어서면 좋은 일자리를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웰빙과 삶의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진’ 부산으로 옮겨오고 싶은 수요는 넘쳐날 것이다. 부산의 존속을 위해, 크게는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은 경제, 금융, 교육, 관광, 의료, 문화, 도시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서울 부럽지 않은 ‘풀코스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박태우 사회부 차장 wideneye@busan.com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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