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천마산 6세기 성곽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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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고 할 만큼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성(城)을 쌓았다. 그래서 발품만 조금 팔면 세월의 이끼가 낀 산성이나 토성, 혹은 읍성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양성지(1415~1482)는 “조선은 가히 성곽의 나라다”라고 했을 정도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 평양성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성곽이 존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한반도엔 2000개가 넘는 성곽 유적이 남아있다. 조선 정조 때 만든 수원화성은 우리의 성곽 기술을 집대성한 건축물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다.

부산은 삼국시대부터 왜의 침입이 잦아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성곽이 만들어졌는데, 지금까지 38곳의 성곽 명칭이 확인됐을 정도다. 이 중 성곽의 실체가 남아 있거나 발굴을 통해 드러난 곳만 해도 동래고읍성, 동래읍성, 기장읍성, 경상좌수영성, 금정산성 등 30여 곳에 이른다. 현재까지 이렇게 확인된 부산 지역 성곽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은 신라식 석축산성인 배산성(삼국시대)이며, 가장 최근에 조성된 성은 절영도진성(1881년 축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미난 것은 부산에 축조된 성곽 중엔 왜구 등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성곽이 아닌 것도 있었다는 것이다. 방목하는 말이 울타리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목장성이 그런 경우다. 부산 사하구 괴정동 등에 산재해 있는 ‘오해야항 목장성’이 대표적이다. 이 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담장으로 돼 있다. 부산 지역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왜성도 존재했는데, 그 흔적만 해도 구포, 죽성리, 임랑포 등 10곳 가까이 된다. 이렇듯 부산은 ‘성곽의 보고(寶庫)’였다.

부산 서구 천마산 모노레일 사업지 일대에서 삼국시대인 6세기께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둘레 600여m 성곽 일부를 비롯해 토기와 기왓장 등이 최근 출토됐다. 이 중 성곽은 부산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일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부산 지역 성곽 중 가장 오래된 성으로 추정되는 배산성과 조성 시기에서 견줄만하기 때문이다. 좀 더 세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천마산 성곽이 배산성보다 더 오래됐다면, 이번 발굴은 부산 고대사를 새롭게 쓸 역사적 성과라 할 만하다. 나아가 우리나라 고대 전쟁사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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