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구 “클래식 알리고, 대중화 다리 놓는 게 내 역할”
슈퍼밴드로 사람·자신감 얻어
30대엔 좋은 음악할 방법 모색
직접 운영하는 SNS, 철학 있어
팬클럽 ‘대니롭다’ ‘달구나’ 든든
명동성당서 바흐 샤콘 연주 ‘꿈’
언젠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32)를 설명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두 단어가 있다. ‘소통’과 ‘노력’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자랐고, 보스턴에 있는 음악대학인 뉴잉글랜드 음악원(NEC·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 연주자임에도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활동 반경 덕분에 따라붙는 수식어 같다. 4년 전 한국으로 옮겨오기 직전엔 캐나다 왕립음악원 로열콘서바토리(RCM) 영 아티스트를 위한 테일러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너무 이른 나이에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연주도, 연습도 덜 하게 돼 1년 만에 관뒀다. 어차피 음악은 죽을 때까지 할 거니까, 30대에는 좋은 음악을 꾸준히 할 방법을 찾아 보자 싶었단다.
지난 5일 개막해 오는 20일까지 계속되는 ‘2024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Busan Chamber Festival)’ 참가 차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부산에 머물려 두 개의 음악회(별이 빛나는 부산 마스터스&마스터피스Ⅰ,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의 토크 콘서트)를 소화한 대니를 만났다. 대니는 현재 크레디아 소속 아티스트이다.
“부산에서 실내악 연주는 처음이었는데 멤버가 정말 좋았어요. 스테판(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은 NEC 때 같은 선생님(도널드 웨일러스타인)한테 배운 데다 앙상블 ‘디토’도 1년 함께한 적이 있어요. 앤드류(홍콩 필 비올라 수석 앤드류 링)와 요나(첼리스트 요나 김)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다들 실력이 대단했어요. 살짝 ‘디토’ 때 느낌도 떠올랐고요. 사실 스테판과 4중주와 5중주를 한다니까 덜컥 ‘오케이’ 한 거죠. 실내악을 할 거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하고 싶거든요. 부산에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12일에 이은 16일 연주는 오롯이 대니를 위한 ‘토크 콘서트’였다. 부산 챔버 페스티벌 김동욱 예술감독과 의논하긴 했어도 대니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예를 들면 첫 곡 파라디스의 ‘시칠리안’은 봄날 창문이 열려 있고 그 안으로 살포시 들어온 바람을 떠올리며 연주했다. 부산과 닮은 곡이라고 생각했단다. 두 번째 곡 에이미 비치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는 친구 사이 우정을 이야기한 곡인데, 정 많은 도시 부산과 연결되더란다. 그리고 바다 도시 부산과 연관된 자연주의 감성을 담은 곡, 영화음악 OST, 대니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느낀 재즈 감성을 담은 곡 등도 포함했다. 특히 마지막 두 곡은 페스티벌 다음 연주회로 이어지는 ‘올 어바웃 탱고’ 프리뷰 격이라면서 피아졸라의 탱고를 들려줬다. 그는 “페스티벌이니까 다양한 걸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니는 연주회와 별도로 가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클래식 공연이라고 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음악가를 위한 공연과 관객을 위한 공연으로요.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엔 포맷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설명도 하면서 조금 더 쉽게 소통이 될 수 있도록 음악회를 여는 거죠. 물론 저도 처음엔 박효신, 김동률 옆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저랑 친한 형이 그랬어요. ‘네가 잘하는 유형을 하면 된다’고. 지금 시대는 완벽함보다는 색깔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운이 좋은 거죠.”
그러면서 대니는 빵과 잼 이야기로 넘어갔다. “클래식 음악은, 빵 한쪽에 듬뿍 바른 잼이에요. 그걸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재즈도 하고, 노래도 하고, MC도 하면서 점점 잼 두께가 얇아지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얇아진 잼도 맛있어야 하니까 연습할 게 산더미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이랑 재즈, 탱고, 영화음악 OST까지 다 연주하니까요. 갈수록 의무감이 들어요.”
의무감이란 단어에서 멈칫했다. 나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 같았지만, 한 개인이 짊어지기엔 너무 거대한 짐 같았다. 그러자 대니는 점점 위축되는 클래식 음악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클래식은 너무 오랫동안 귀족을 위한 세상이었고,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걸 깰 필요가 있어요. 클래식 음악 자체는 최고이고, 없어질 수 없는 음악이지만, 더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먹고살려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고 더 과감하고 용기 있게 프로그래밍도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요. 우리가 K팝 문화와 소통 방식을 조금만 따라가도 (클래식) 스타가 훨씬 더 많이 생길 수 있을 텐데요.”
그제야 조금 더 이해됐다. 대니의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에 대한 도전이. 대니에게 ‘노력’과 ‘성실’이라는 단어가 왜 따라붙는지도 알 것 같았다. “제가 임윤찬도 아니고…. 지난 12월엔 12개의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내용이 다 달랐어요. 당연히 연습할 게 산더미였죠. 하루에 8시간을 연습해도 끝이 안 나더라고요.”
한국살이는 이제 곧 4년이 되지만, 미국에서 살 때에도 대니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NEC에 다닐 때에도 친구·후배 등과 여자 노숙자 쉼터에서 음악 시리즈를 6년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때 생각했어요.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공연장에 못 오는 사람들, 예를 들면 아이들이나 노숙인 등 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으면 진짜 연주자가 되는 순간이 오겠거니 하고요. 우리를 좋아해서 공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하고는 다르잖아요.”
대니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핑크퐁 클래식나라’ 프로젝트를 7년째 포기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핑크퐁은 객석 플레이까지 있어서 몇 배나 힘든 공연이다. “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아이들이 찾는 공연이잖아요. 선입견이 생기기 전에 클래식을 잘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한국에서 저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끝까지 함께하려고요. 항상 더 큰 세상을 볼수록 더 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대니도 바이올린을 시작한 건 6살 때였지만 전공은 대학 입시 때가 되어서 뒤늦게 결정했다. “우연히 참여한 예술캠프가 전환점이 되었어요. 5주간 열린 캠프에서 음악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음악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죠. 그런데 굉장히 운이 좋아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그 도움받은 걸 이젠 좀 베풀어야 할 때 같아요.”
그래도 중요한 건 실력임을 거듭 강조했다. JTBC ‘슈퍼밴드2’(2021)에 출연을 결심하고, MBC의 ‘TV예술무대’ MC(2022~ )를 진행하면서도 본인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 아티스트는 셀프 마케팅이 중요해요. 연예계가 아니어서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클래식은 전통이 있다 보니 뮤지션이 다른 뮤지션을 초대하잖아요. 열심히 하면 기회는 생기더라고요. 지난해 부산시향과 베토벤 삼중협주곡 협연도 했지만, 문을 열어주는 건 인맥이고 소속사지만 들락거리는 건 제 몫인 거죠. 결국 실력이 중요해요. 같이 연주하는 사람이 다시 부를 수 있도록 하려면 실력인 거죠.”
그래도 ‘슈퍼밴드’ 참가를 통해 얻은 것도 있었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하면서 항상 두렵거든요. 다양한 걸 할 수 있나, 혹은 해도 되나, 같은 생각요. 그런데 결론은 지금 해야 하는 세상이 왔고, 한국에서 제 역할이 클래식 음악과 대중 세계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니는 팬클럽 ‘대니롭다’와 팬덤명 ‘달구나’ 소통을 비롯해, SNS 활동도 열심이다. 그 배경엔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해 준 2016~2018년 ‘디토’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처음엔 게스트였지만 기회가 생겨서 너무 좋았어요. 예술의전당에서 첫 공연을 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관객층이 너무 젊은 거예요. 미국과 유럽 쪽은 거의 다 ‘흰머리 관객’인데, 여기는 어르신도 있지만 어린 친구들도 많았으니까요. 객석에서 환호하면서 소리 지르는 걸 보고 여긴 진짜 가능성이 많구나 싶었어요. 오케이! 그러면 한국 관객들과 진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말을 더 배웠고, SNS도 시작했죠. 연습하는 영상도 올리고요. 사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결과만을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BTS는 과정을 보여줬어요. 사람들한테 와닿는 건 ‘인간극장’처럼 과정을 보여주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려고 직접 SNS를 관리해요.”
마지막으로 대니에게 일과와 꿈이 있는지 물었다. “일과를 들여다보면 ‘루틴’해요. 아침에 눈 뜬 뒤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운동을 해요. 그리고 점심 먹고 휴식 취하다가 오후 내내 대여섯 시간씩 연습을 해요. 꿈은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것과 10년 안에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먼저 명동성당에서 바흐 샤콘을 연주하고 싶어요. 성악가들과 함께. 10년 안에는 학장이 되고 싶어요. 학교는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어요. 사실 한국에서 학교도 안 나왔고, 콩쿠르 출신도 아니어서 어떤 땐 낙하산 느낌도 들거든요. 지금도 모든 게 너무 감사하지만, 제 꿈을 이룰 때까진 열심히 살 거예요.”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