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부터 철거까지’ 43억 세금 삼킨 간절곶 드라마세트장
랜드마크로 지었다가 흉물로 전락
“부실행정이 초래한 세금낭비 전형”
주민들 “책임지는 사람 없어” 분통
‘해돋이 1번지’ 울산 간절곶공원에 세워진 일명 드라마세트장이 15년간 혈세 약 43억 원을 집어삼키고 결국 헐려 나갔다. 지자체의 보여주기 식 부실 행정이 초래한 예산 낭비의 전형이라는 비난과 함께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바다가 코 앞인 울주군 간절곶 드라마세트장에 도착하자 화려한 저택은 온데간데없고 넓은 황토밭이 눈에 들어왔다. 해송이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방치된 황토밭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울주군은 지난해 11~12월 해안가에 버티고 있던 드라마세트장을 모두 허물어뜨렸다. 철거부지 옆 산책로에서 만난 주민 이 모(66) 씨는 “이렇게 밀어버릴 것을 (세트장을 짓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놔뒀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이렇게 해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혀를 찼다.
이 황량한 부지는 근시안 전시행정이 남긴 부산물이나 다름없다. 애초 이곳에는 2010년 대지면적 3335㎡, 연면적 1067㎡ 규모 드라마세트장이 전국적 유행을 타고 건립됐다. 울주군이 신장열 군수 시절 주민 건의 형식을 취해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계절’ 오픈 세트장으로 유치한 것이다. 공사비 30억 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주민숙원사업비로 충당했다. 당시 지역사회에서는 “주민 위험 수당이나 다름없는 원전 지원금으로 특정 방송사 세트장을 짓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드라마가 종영되자 다시 거액의 세금이 투입됐다. 울주군이 11억 원을 들여 세트장을 리모델링하고 수익시설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세트장은 ‘메이퀸’ ‘한반도’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사용되다가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
민간업체가 입점할 때마다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일도 반복됐다.
2011년 (주)테디베어뮤지엄부산은 세트장을 테디베어박물관으로 꾸미겠다며 울주군과 계약했다가 포기했고, (주)유엠엑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결혼 스튜디오 등을 차렸으나 손실이 겹쳐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14년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섰지만 적자 누적으로 2017년 계약기간조차 못 채우고 사업을 접었다. 이후 다른 민간업체가 스튜디오, 카페 등으로 활용하다가 코로나19로 영업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주인이 자주 바뀌는 사이 정체성도 불분명한 드라마세트장은 해풍에 철근이 부식되고 비가 새는 등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새하얀 저택은 어느샌가 녹물로 얼룩진 흉물로 변했다.
2012~2019년 세금으로 치른 유지보수 비용만 8억 7600만 원이다. 사용수익금 6억 2000여만 원을 빼도 2억 5000여만 원 손해가 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 안전진단 비용도 2016년과 2019년 2차례 총 1700여만 원이 들어갔다.
울주군은 2021년 안전상 문제로 세트장을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세금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11~12월 철거 기간 폐기물 처리비, 감리비 등으로 나간 돈만 4억 원이 조금 넘었다. 드라마세트장 건립부터 철거까지 세금만 계속 낭비한 셈이다.
울주군 한 주민단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한 번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가고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주민 숙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원전지원금을 사용한 대표적인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간절곶 드라마세트장이 과연 얼마만큼 관광객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여전히 가득하다. “랜드마크 조성에 집착하는 자치단체들이 이번 사례를 교훈 삼아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드라마세트장이 철거되면서 이제 해당 부지는 어떻게 활용될까. 울주군 관계자는 “아직 뚜렷하게 활용 방안이 결정된 것은 없고, 전체적인 해양관광개발 용역이 진행 중이어서 결과가 나와봐야 알 것 같다”며 “현재로선 여기에 꽃밭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래 이곳은 시민들이 돗자리 펴고 바다를 감상하던 너른 잔디밭이었다.
■간절곶 드라마세트장 건립·사용 이력
△2010년 7월=드라마세트장 유치 건의서 제출(주민→울주군)
△2010년 8월=MBC드라마 오픈세트장 협약 체결
△2011월 3월=울산MBC, 세트장 울주군에 기부채납
△2011년 3월=테디베어뮤지엄부산, 세트장 낙찰
△2011년 9월=테디베어뮤지엄부산, 사업 포기
△2012년 4월=유엠엑스, 웨딩전시관 설립
△2014년 7월=유엠엑스, 적자로 계약 해지
△2014년 10월=커피숍 파스쿠찌 입점
△2017년 1월=파스쿠찌, 조기 사업 철수
△2017년 5월=아이엠아이비, 스튜디오 설립
△2021년 9월=세트장 임대사업 종료
△2023년 11~12월=세트장 철거공사 마무리
△2024년 1월=꽃밭 조성 예정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