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 초비상… “다음 달까지 버티기 어렵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전쟁 장기화에 원유 수급 위기

나프타 품귀 현상에 가동률 최저
제조업 생산비 12% 상승 전망
기름 공급 안 되는 상황 올 수도
환율 1500원 위로 다시 치솟아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에 ‘원유 수급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유가 상승도 문제지만, 아예 기름 공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계속되면 한국의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하는 등 산업 전반에 충격이 온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양측이 가스시설을 서로 공격하면서 에너지 전쟁이 더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4월 위기설’까지 대두

19일 산업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봉쇄 전 마지막으로 통과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이 20일 새벽 국내에 입항한다. 24일에는 대체 항로를 이용한 또 다른 유조선이 들어온다. 하지만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긴급 물량 2400만 배럴을 보내주고 우리나라가 비축유 2246만 배럴을 풀기로 한 계획이 그대로 진행되면 최악의 위기 없이 4월 말까지 버틸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를 적재한 선박 1척도 UAE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이동 중이다.

서울과기대 유승훈 교수는 “UAE 물량과 비축유를 합치면 우리가 22∼25일가량을 추가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차량 5부제 실시 등 강력한 수요 대책이 병행된다면, 4월 말까지는 수급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미 석유화학업계는 초비상이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분리되는 성분으로 석유화학 공장에 공급돼 에틸렌 등을 만든다. 에틸렌은 ‘산업의 쌀’로 불린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을 만드는 원료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이미 공급 불가를 뜻하는 ‘불가항력’을 선언한 여천NCC 관계자는 “해협이 봉쇄되면서 가동률이 상당히 낮아져 최저가동률 수준”이라며 “전쟁 전에는 600달러였던 나프타를 사려면 1100달러 이상을 줘야 하고, 그조차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NCC(나프타분해시설) 설비가 없어 에틸렌을 외부에서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에틸렌을 구할 수 없어서 전쟁 이후 딱 이틀 만에 가동 정지가 됐다”고 말했다.

UAE에서 확보한 물량 역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정부는 호르무즈해협과는 떨어진 UAE 푸자이라 항구를 통해 원유를 들여온다는 계획이지만, 이곳 역시 이란의 공격권 아래 있다.

수급 불안이 눈앞에 닥치자 정부는 원유에 대한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올렸다. 또 수요 관리 차원에서 차량 5부제나 10부제 등의 대책을 검토 중이다. 만약 시행되면 걸프전 당시인 1991년 이후 35년 만이다.

18일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7.38달러로 3.8% 올랐고 종가 이후 111달러대까지 오르며 상승 폭을 키웠다.

■환율, 17년 만에 최고 수준

원유와 달리 가스의 경우 재고 물량이 많고, 겨울이 지나 비수기로 접어든 만큼 당장의 수급 대란 가능성은 낮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은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란 남서부 아살루예의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를 폭격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이란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거점인 라스라판 산업단지를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하고 있다. 이 공격으로 가스 액화 시설이 손상됐으며, 이날 새벽 추가 공격으로 여러 LNG 시설에 대규모 화재와 광범위한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중동 사태 악화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며 증시는 약세를 보였다. 19일 코스피는 161.81포인트(2.73%) 내린 5763.22에 장을 마쳤고 코스닥도 20.90포인트(1.79%) 내린 1143.48에 거래를 끝냈다.

원달러 환율도 1500원 위로 다시 올라섰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17.9원 오른 1,501.0원으로 집계됐다. 주간 거래 장중 기준으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은 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지며 항로가 차단되면 유가가 150∼180달러 수준으로 오르고, LNG 가격은 150∼200% 폭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원 측은 "에너지원·원자재 조달을 다변화하고, 에너지와 산업재 공급망을 통합 관리하는 등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통합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