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임박, 떨고 있는 부산 중소기업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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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
부산 사업체 전체 12.1% 차지
중기 위기감 속 지역 경제 촉각
“안전관리자 연봉 지급도 난감”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중소기업 및 건설업 단체가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중소기업 및 건설업 단체가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주가 구속되는 상황인데,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오너가 구속되면 그 기업은 그대로 망하는 거죠. 기업 하지 말란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부산에서 자동차부품 금형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A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확대 적용이 부산 중소기업 생태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봤다. 인력이 풍부하고 직무가 세분화돼 있는 대기업과 달리 열악한 중소기업은 업주가 영업·생산·판촉·총무 등 1인 4역은 기본으로 담당하는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업주가 하루 종일 공장에 붙어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A 씨는 “안전 규칙을 준수하라고, 규정을 지키라고 입이 아프도록 말해도 방심한 순간 터지는 게 사고”라며 “중처법으로 사장이 사라지면 직원들은 길거리에 내몰리고, 수많은 하청업체들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오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현장에도 중처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부산지역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에서는 업계 사정을 도외시한 ‘기업을 옥죄는 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부산의 전체 사업체 수는 40만 565개인데, 이 중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체 수는 4만 8521개로 12.1%를 차지한다. 부산의 50인 이상 사업체는 3537개로 0.8%에 불과하다. 이렇다 할 대기업이 없는 부산에서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부산의 주력 산업군으로, 중처법 확대 적용은 부산 지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부산은 다른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해 사고 가능성이 큰 제조업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2021년 기준 부산의 제조업체는 3만 9984개로 전체 사업장의 8.2%를 차지한다. 특히 부산의 주력 산업인 조선기자재, 기계,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은 산업재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다른 지역보다 중처법 확대 적용에 따른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전국 50인 미만 중소기업 892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처법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처법 대응 능력이 부족한 이유로 응답 기업의 35.4%가 ‘전문 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부산에서 공산품 표면 처리업체를 운영하는 B 씨는 중소기업에 안전관리 전문 인력을 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B 씨는 “안전관리자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연봉을 8000만 원씩 부르는데, 아무런 지원 방안도 없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전문 인력을 두라는 것은 꿈같은 소리”라고 지적했다. 또 B 씨는 “고물가·고금리에 경기 침체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눈앞에 놓여있는데, 1년이든 2년이든 지금의 경기 상황이 조금 나아진 뒤 중처법 적용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중처법 확대 적용에 대해 노동계 등 시민사회단체는 “더이상의 유예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안전연구소 이숙견 활동가는 “중처법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2년이라는 유예 시간을 기업들에게 줬다”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미명 아래 노동자의 건강을 방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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