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정 갈등 2개월, 응급치료 받을 권리 보장해야
90대 환자 병원 전원 거절… 끝내 숨져
또 불행한 일 발생 않게 의정 대화 시급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4주차로 접어든 11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에 설치된 전공의 진료 공백으로 응급실 정상 진료 차질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져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4주 동안 군의관 20명과 공중보건의 138명 등 모두 158명을 병원 20곳에 파견해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2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양측 모두 처음 주장에서 크게 바뀐 게 없다는 게 문제다. 도무지 출구가 안 보인다. 그 사이에 낀 국민은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달 초 부산에서 90대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거절당해 결국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환자의 사망이 의정 갈등으로 야기된 의료 공백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환자가 응급치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응급의료 체계의 취약성과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환자는 부산의 한 공공병원에 옮겨졌다가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기서 처치가 어려워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문의했지만 “심근경색 환자의 처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원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더불어 필수의료에 종사할 의사 수를 확충하려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병원으로 문의를 했지만 심근경색 환자의 처치가 어렵다고 전원을 거절당하고 숨지는 이 같은 사건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료 공백이든 아니든 환자가 응급치료를 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의료기관이 환자를 외면하는 것은 의료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결국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의대 증원 정책과 함께 응급 의료체계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정 대화가 시급하다. 양측 갈등이 길어져 의사가 환자를 떠나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의정 갈등으로, 예정된 암 수술 등이 취소되는 사태가 병원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의정 갈등이 격화되면서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극한으로 치닫던 의정 대결 국면은 정부의 유화 제스처로 잠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도 엿보였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자는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이 아니라 오히려 정원 감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래서는 꽉 막힌 의정 협상을 뚫을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우선 전공의부터 병원으로 돌아오고, 의대 증원 문제는 정부와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 양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 ‘2000명 고수’나 ‘2000명부터 포기’ 식의 전제는 곤란하다. 지금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피를 마르는 심정으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생명권’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와 의료계의 싸움에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픈 국민이다. 응급 치료를 받을 국민의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의료 시스템의 붕괴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