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에 ‘검은 봉지’ 씌운 30대 고발… 실질적 처벌은 어렵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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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겨레하나 9일 경찰에 고발
재물손괴·모욕 적용 쉽지 않아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검은 봉지에 덮여 있다. 마스크에는 빨간색으로 ‘철거’가 표시된 모습. 일간베스트 캡처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검은 봉지에 덮여 있다. 마스크에는 빨간색으로 ‘철거’가 표시된 모습. 일간베스트 캡처

부산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검은 비닐 봉지를 씌운 30대 남성을 경찰에 고발했다. ‘철거’라 표시한 봉지를 소녀상에 덮은 그를 재물손괴와 모욕죄 혐의로 고발했지만, 낙서 같은 훼손은 아닌 데다 모욕 대상이 되는 주체가 모호해 실질적 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부산겨레하나는 지난 9일 오후 재물손괴와 모욕 혐의로 30대 남성 A 씨를 부산 동부경찰서에 고발했다고 11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6일 부산 동구 초량동 평화의 소녀상을 검은 봉지로 덮었다가 경찰에 제지당한 인물이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A 씨는 빨간색으로 ‘철거’라 적힌 하얀 마스크를 검은 봉지에 붙인 채 평화의 소녀상에 다가갔다. A 씨는 마스크 부분을 소녀상 얼굴 부분에 맞게 봉지를 씌웠고, 인근 강제징용 노동자상도 검은 봉지로 덮었다. 경찰은 이를 인지한 뒤 검은 봉투를 수거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에 소속된 인물로 추정된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지난 3일 오후 2시께 부산 동구 초량동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시도했다. 이들은 ‘일본영사관 인근 소녀상은 국제법(비엔나 협약)을 위반한 불법 조형물’이라며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집회 현장에는 부산에 거주하는 30대로 추정되는 A 씨 등 11명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동구청에서 시설물 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은 질서 유지선을 만들어 대치했다. 경찰은 이날 소녀상에 접근하지 못한 A 씨가 주말에 다시 나타나 검은 봉지를 씌운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철거’를 적은 검은 봉지에 덮여 있다. 일간베스트 캡처 부산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철거’를 적은 검은 봉지에 덮여 있다. 일간베스트 캡처

결국 부산겨레하나가 “소녀상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A 씨를 고발했지만, 실질적 처벌이 이뤄지려면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씨로 추정되는 인물도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에 “재물손괴 해당 안 되고ㅋㅋ”라는 내용이 담긴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그동안 소녀상에 귀마개나 마스크를 씌우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검은 봉지로 소녀상을 덮는 행위를 손괴로 판단하긴 쉽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검은 봉지를 덮는 게 재물의 효용을 침해했다고 고려할 수 있지만, 낙서를 하거나 동상을 긁은 것처럼 명백히 손괴로 보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모욕죄 적용도 순탄치 않은 실정이다. 사람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동상인 소녀상을 동일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모욕을 당한 주체가 피해 할머니인지 구청인지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사실상 소녀상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모욕하는 행위에 가까워도 모욕죄로 이어지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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