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거짓과 진실 사이
영화평론가
안국진 감독, 손석구 주연 '댓글부대'
여론조작팀 실체 파헤치는 모험기
"진실 여부 의심해야" 메시지 담겨
습관적으로 기사를 검색한다. 정치, 문화, 연예 가릴 것 없다. 헤드라인 기사들을 한 번씩 클릭해본다.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댓글창을 열어 오가는 논쟁에 빠져든다.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십이 현재의 무료함을 채워주니 만족스럽다. 머리로는 가짜뉴스나 댓글부대의 조작 뉴스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비슷한 기사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오면 언제부터인가 그걸 진실이라고 믿는다. ‘찌라시’나 ‘기레기’들이 쓴 기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여론이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댓글부대’의 오프닝은 한국 역사에서 촛불을 가장 먼저 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의하면 PC 통신 이용자인 16세의 ‘앙마’가 PC 통신 유료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제안하면서 첫 촛불집회가 시작했다고 한다. 이어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라는 자막이 뜬다. 그러하니 2017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집회와 민간인 댓글부대 논란을 일으켰던 어떤 그룹까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안국진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오프닝은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는 동시에 영화 속 촛불 집회의 시작이 과연 진실인지 거짓인지 호기심을 일게 만든다. 그러다 이내 그것들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감독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완전한 진실은 아니지만, 완전한 거짓도 아니다”는 논리를 영화 내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닝이 지나면 허세 가득한 기자 ‘상진’이 등장한다. 그는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가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자신이 쓴 기사가 세상을 들썩이게 할 거라고 생각하며 야심차게 쓴 기사는 제보자의 죽음으로 조용히 묻힌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발생한다. 대기업 비리를 폭로한 제보자의 죽음이 상진 때문이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세상은 상진을 기레기라고 비웃고, 기사는 오보로 판명나며 정직까지 당한다. 억울한 상진 앞에 의문의 제보자 ‘찻탓캇’이 연락을 취해오면서 영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찻탓캇은 상진이 겪었던 일들이 ‘만전’의 여론 조작에 의해서였음을 알린다. 찻탓캇은 온라인을 조작하고 여론을 선동하는 일명 ‘팀알렙’의 멤버 중 한 명으로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댓글부대였다.
댓글부대란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 등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서 사이버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집단을 뜻한다. 찻탓캇은 알렙 멤버들이 작성하는 글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낱낱이 증언한다. 처음엔 상진은 찻탓캇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상진은 소문으로만 무성한 댓글부대의 행적을 찾아 헤맨다. 결국 암암리에 떠돌던 이야기의 실체를 확인한 상진은 특종을 들고 신문사로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라면 갈등은 해소되고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극장을 나서야 옳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시 상진을 혼돈으로 밀어 넣고, 관객은 당혹감에 빠지는 결론을 선보인다.
즉 감독은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부대를 파헤치는 듯 보이지만, 더욱 미궁에 빠뜨린 것이다. 진실에 다가갔다 믿은 순간, 거짓에 농락당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마치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놓을 테니 판단은 관객이 내리라는 듯 말을 건다. 영화의 장르마저 다큐멘터리인지 블랙코미디인지 헷갈릴 정도이니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시작한다. 무언가 찝찝함을 안고 핸드폰을 켜는 순간, 클릭한 기사 내용을 믿어도 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를 발견한다. 바로 그 순간 영화가 현실과 만난다. 완벽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면 의심의 눈길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체험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