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란으로 바위 깰까…조선 빅3 상대 ‘특허 분쟁’ 나선 거제 기자재업체
LNG선 건조 시 필수 안전설비
2007년 ‘대빗 장치’ 특허 출원
지난해 사내협력사 계약 해지
조선 3사 유사 장치 계속 사용
기술 침해 주장에 “다른 장치”
대빗은 LNG 운반선 저장탱크 내부에 설치한 철재 작업대 해체 때 필요한 안전장치다. 홀 안쪽에 와이어를 설치해 이동 시 무게가 한쪽을 쏠리는 것을 막는다. 왼쪽은 LNG 저장탱크, 오른쪽은 D 조선소 대빗 장치다. 독자 제공
“열 가지 중 아홉 가지가 완전히 동일합니다. 명백한 기술 침해죠. 그런데 단 한 가지 미세하게 변형했다고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네요. 말로만 듣던 대기업 갑질, 당해 보니 정말 피눈물 납니다.”
경남 거제의 한 영세 조선기자재업체가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업계 빅3와 힘겨운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대기업과의 특허권 다툼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반전이 나올지 주목된다.
1. 조선소 족장(발판) 부문 협력업체인 A사는 2007년 ‘트러스 상판 해체 장치 및 방법(제10-0948447호)’과 ‘대빗 장치(제10-0929311호)’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대빗은 LNG 운반선 핵심 설비인 저장탱크 제작 과정에 내부에 설치한 철제 작업대(트러스)를 해체할 때 사용하는 필수 안전장치다.
A사는 홀 안쪽에 인양줄(와이어)를 설치해 이동 시 무게가 한쪽을 쏠리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기술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이를 활용해 17년간 거제 B 조선소 사내협력사로 일했다. 하지만 장기 불황 후유증으로 경영난에 빠졌고, 작년 6월 계약 만료 후 폐업했다.
특허 분쟁은 이후 A사가 현장에서 철수한 뒤 불거졌다. B 조선소가 A사 특허 기술을 활용한 대빗 장치를 계속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A사가 반발하자 B 조선소는 기술적으로 다른 장비라고 맞섰다. 결국 A사는 작년 11월 B 조선소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에 대빗장치 사용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와 함께 유사한 장치를 사용 중인 다른 대형 조선소 2곳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자 B 조선소는 특허심판원에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을 청구했다. 이는 현재 사용 중인 기술이 기존 특허권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받는 심판 절차다. 이후 심판원은 5개월간의 심리 끝에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심결했다. B 조선소 주장을 받아들여 A사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정한 것이다.
A사는 대기업 봐주기 심결(심리결정)이라며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의 소’를 제기했다. A사 관계자는 “B 조선소에서 사용 중인 대빗장치는 우리 핵심기술을 본따 미세하게 변형한 것 뿐”이라며 “특허법원 결과를 보고 대법원 판단까지 받을 생각이다. 동시에 국회 청원, 감사요구,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B 조선소는 “A사는 7가지 일반적 기술 구성에 1가지를 추가해 특허를 취득했다”면서 “우리도 A사와 다른 진보된 새로운 기술을 더해 차별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A사 장치보다 제작이 간단하고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특허 판단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유사함이 아니라 구성요소와 진보성 유무, 실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이를 대기업 봐주기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A사도 기존 기술 대비 진보성을 인정받은 요소를 더해 특허를 취득했고, 우리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기존 기술 대비 진보성을 인정받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특허를 취득했다”고 반박했다.
A사가 특허 받은 대빗 장치 개념도(왼쪽)와 B 조선소에서 사용 중인 대빗 장치 개념도(중간). 오른쪽은 C 조선소 대빗 장치 도면이다. 독자 제공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산업재산권 다툼이 잇따르면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할 제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 조사’를 보면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역량 점수는 49.3점으로 대기업(87점)의 절반 수준이다.
또 기술 침해 피해를 봐도 중소기업의 15.8%는 별도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규모가 작은 회사로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할 수 없어 분쟁을 피하거나, 분쟁 중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뿐 아니라 돈과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면서 “특허청이나 공정위 단계에서 이기더라도 정작 재판에선 패하거나 시간 끌기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기업의 수준을 고려한 더욱 실질적인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법적 분쟁뿐만 아니라 지자체나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중재해 원만히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