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AI 전쟁, 미디어의 운명은
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 부장
AI기업 vs 미디어 주도권 다툼 한창
세계미디어총회서 AI발 태풍 확인
기회는 AI가 대체하지 못할 ‘신뢰’
독자 스스로 찾게 하는 미디어 돼야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과거 인터넷, 모바일 혁명에 비해 더 강하고 빠르게 AI 환경이 급변한다. 글로벌 경제의 주요 플레이어인 대한민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그중 미디어 업계는 이른바 AI로 인한 ‘탈중개화’로 큰 위기를 맞았다. 소셜미디어, OTT에 이어 생성형AI 서비스마저 견고하던 ‘미디어-독자(시청자)’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소비자에 닿은 것이다. 이용자가 미디어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이미 왔다는 위기감이다. 대규모 AI 학습으로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미디어 콘텐츠가 절실한 AI기업과 세계 미디어 업계 사이에 생존을 건 치열한 전쟁이 한창인 이유다.
지난달 29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 티볼리 콩그레스 센터. 영국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 후안 세뇨르 회장이 연단에 섰다. 그는 매년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 등장해 세계신문협회(WAN-IFRA)와 함께 준비한 세계 미디어 연례 혁신 보고서를 공개한다. 75개국에서 온 350여개 언론사 리더와 관계자 1000여 명이 숨을 죽이고 그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세뇨르 회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디어는 신뢰를 잃으면 독자를 잃습니다. 신뢰를 얻으면 독자를 얻지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신뢰입니다. 세계 미디어는 투자를 놓치지 말고 서둘러 신뢰 회복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미래에는 넘쳐 나는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는 미디어에 소비자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용자의 8% 정도만이 ‘AI를 신뢰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미디어 업계는 사실 미디어 콘텐츠가 없다면 AI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AI 학습을 위해서는 위키피디아나 기업 웹사이트, 학계 데이터에 더해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언론사 콘텐츠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AI기업과 협상 테이블에 나선 미디어의 힘이므로, 글로벌 검색 포털과 개별 계약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던 과거 사례를 답습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크다. 미디어 업계는 그간 IT 발전에 따른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급속도로 쇠퇴하며 줄도산을 겪는 미디어 빅뱅을 겪어왔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올해 총회의 주제 역시 ‘AI시대 뉴스미디어의 미래’였다. 3일간 마련된 프로그램 중 절반 이상이 AI와 관련된 것이었다. 당연히 챗GPT로 생성형AI 서비스를 주도하는 오픈AI 등 테크기업과 미디어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AI학습에 따른 저작권과 보상 문제가 논의의 핵심이다. 오픈AI 미디어 파트너십 책임자인 바룬 셰티는 한 세션에서 “오픈AI는 협력자로서 언론과 관계를 맺고 많은 기회를 주려한다”고 강조했다. “오픈AI는 저작권 침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요?” 그를 향해 참석자들의 날 선 질문이 계속 이어지며 박수까지 터져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재산권 전략 고문이었던 오픈AI 지적재산권·콘텐츠 부문장 톰 루빈도 대담을 통해 “오픈AI는 대기업은 물론 소규모 독립 미디어들까지 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세계신문협회와 체결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개했다. 하지만 기조연설을 한 파이낸셜 타임스 최고경영자 존 리딩은 “콘텐츠 도달 범위를 확장시키고 사용자가 AI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영향력을 가진 우리는 AI기업에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다”고 강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AI가 뉴스 콘텐츠를 활용하는 사용량과 수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지금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면 함께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는 제안을 던진 것이다.
이런 갑론을박 속에서도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누구도 AI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신문협회 조사에 따르면 이미 세계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AI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기자들 역시 취재 과정에서 생성형AI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게 현실이다. 돌파구를 찾지 않고 규제로만 혁신을 질식시키면 결국 역풍에 고사하고 마는 비극에 이를지도 모른다.
깊이와 희소성을 가진 고품질 콘텐츠와 가치 있는 뉴스로 직접 독자와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일, 그리고 AI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AI가 하지 못하는 팩트를 확인해 가치 있는 뉴스 생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것. 그것이 AI시대에 독자 스스로 미디어를 찾게 만드는 운명의 ‘치트 키’이다.
※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