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여, 읽고 쓰고 사유하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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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비평의 세계 / 이진서·이정숙

고석규문학관 비평 수업 바탕
청소년 놀라운 성장 과정 담아
우리 사회 대화 부족도 느껴져

고석규비평문학관 산하의 청소년 비평학교에서 학생들이 비평 수업을 하고 있다. 고석규비평문학관 제공 고석규비평문학관 산하의 청소년 비평학교에서 학생들이 비평 수업을 하고 있다. 고석규비평문학관 제공

<청소년 비평의 세계>는 경남 김해 삼방동에 자리 잡은 고석규비평문학관 산하의 청소년 비평학교(이하 청비)에서 이루어진 일 년간의 수업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청소년 비평? 서로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비평은 그저 어렵게만 느껴진다. 심지어 요즘 사람들은 사실상 비난을 하면서 듣기 좋게 포장해 비평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추세가 아닌가. 안 그래도 할 일 많은 미래세대에 왜 창작도 아닌 비평을 시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작은 아씨들>, <톰 소여의 모험>, <15소년 표류기>를 만났다. 열 살 최희정, 열세 살 조희경 양이 책을 읽은 감상을 기록한 글이었다. 아이들이 아직도 이런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 나도 몰래 그만 책 속으로 들어가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톰 소여를 만나니 그동안 잊고 지낸 허클베리 핀의 안부도 궁금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을 빛내 주고, 오늘의 내가 있게 해 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의 나는 혼자서 책만 읽었지,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안타깝지만 문자문화는 주변부로 급격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게임을 훨씬 더 사랑한다. 지금 같은 영상시대에 청소년에게 책 읽기를 어떻게 권장해야 할까 고민이다. ‘인간이 사고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사유는 생각의 과정이요, 집이다. 이 집은 쉽게 지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제시하는 세계와 독자인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빚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세계는 비평적 책 읽기를 통하지 않고는 생성될 수 없다.’ 남송우 문학평론가의 추천 글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청비 토론’ 주제와 내용의 심오함이었다. 간병살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성적이 인성보다 중요한가, 범죄자의 신상 공개,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인터넷 실명제,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인가 등등 어느 하나도 간단치가 않았다. 대학생이 아니라 책 좀 읽는다는 성인들한테 토론을 시켜도 버거운 주제들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토론은 영 자신이 없다. 토론 프로를 즐겨 듣지만, 제대로 된 토론을 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이 책에는 이런 사람들의 뼈를 때리는 대목이 있다. ‘창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사유는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 온당한 시비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런 온당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을 위해서 대화적 사고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 세대는 대화가 부족했고, 그래서 지금 대화가 간절하게 필요하다.

열다섯 살 안형준 군이 “에코페미니즘이란 이름만 들었을 때 어려운 말 같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서서 질문을 던지니 그게 바로 에코페미니즘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보면 또 쉬워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비평은 창작과 별도가 아니라 연속되는 것이었다. 문학, 영화, 음악, 미술, 학문, 기술, 건축이 비평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참여 학생들의 다양한 개인적 시각이 잘 드러나고, 비평 대상 책들이 다양해서 좋다. 10대 때 이런 책들을 읽고 토론을 한다면 어떤 어른으로 성장을 할지 매우 궁금해진다. 최소한 지금 우리 정치권에서 보이는 불통과 독주는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은 “글쓰기에 무심했던 청소년들이 비평적 학습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마법 같은 경험이 청소년 비평수업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디지털에 점령당한 아이들을 다시 책 앞으로 불러 모아 함께 읽고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은 함께 읽으면서 더 깊이 읽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비평적 글쓰기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영상을 보는 시각적 행위는 쉽고, 빠르고, 재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읽고 쓴다. 그것이 인간의 사유 능력을 비약적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읽고, 쓰고, 사유하라! 이진서·이정숙 엮음/글넝쿨/352쪽/1만 8000원.


<청소년 비평의 세계> 표지. <청소년 비평의 세계>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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