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공급 법칙’이 뭐야? 비쌀수록 잘 팔리는 ‘환상’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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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상품 / 김방희

품질과 가격 경쟁 시대는 가고
환상이 상품의 본질이 된 시대
세계화와 소셜미디어 큰 영향

<환상 상품> 표지. <환상 상품> 표지.

가격이 비싸지면 수요가 줄어든다. 반면 공급은 늘어났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서 상품이 남아돈다. 결국 상품 가격은 떨어지고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맞물리는 지점에서 적절한 가격이 결정된다. 미시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학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내용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경제학의 핵심이다.

이 수요공급의 법칙이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더이상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오히려 수요가 몰리기도 한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그 가격만큼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렇다. 몇 해 전 셀린느는 한정판 비닐 가방(검정 비닐 봉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그냥 비닐로 만든 흔한 가방이다)을 무려 60만 원 상당의 가격에 내놓았다. 조롱도 많았지만(내가 그랬다), 그런 조롱을 조롱이나 하듯 출시 직후 동이 났다.

<환상 상품>의 저자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말한다. 명품만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냉정하게 우리의 소비 패턴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환상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지 새삼 놀랄지도 모르겠다. 명품 소비는 어느 정도 이상의 구매력을 요구하지만(사실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환상 상품의 소비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행해진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굳이 먼 길을 달려 블루보틀(부산엔 없다)을 찾고, ‘크림’에서 웃돈을 주고 아식스 운동화를 산다. 두 가지 소비 행위 모두 최근 내가 직접 행한 것들이다. 값비싼 명품은 아니더라도(명품도 환상 상품의 일부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수요공급의 법칙을 어기고 환상을 산다.

책은 환상이 어떻게 이 시대 상품의 본질이 되었나를 다룬다. 세계화와 소셜미디어가 큰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소비 환경 아래서 소비자의 기대나 환상이 어떻게 동일화 되고, 또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탐구한다. 왜 미국의 중·상류층 10대와 서남아프리카 빈민 가구 자녀가 자신의 처지나 상황과 관계 없이 모두 같은 환상을 갈구하는지를 파헤친다.

그러나 의외로(?) 비판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현상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기업의 측면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을 이어간다. 나이키와 슈프림, 스타벅스 등 대중의 환상을 자극해 성공을 거둔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나아가 특별한 환상 상품이 없다는 점이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꼬집는다. 아이폰은 환상을 팔지만 갤럭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품질’과 ‘가격’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불행하게도 더이상 품질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다. 저자는 한국 기업의 제조·생산 공정은 이미 초일류에 들어서있지만, 유통과 마케팅에서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미 만연한 소비행태에 대해 ‘선비질’하듯 이러니 저러니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내가 아무리 조롱하고 못마땅해 하더라도 셀린느 비닐 가방은 보란 듯 ‘완판’된다. ‘옳다 그르다’ 식의 도덕적 판단보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나’에 대한 이해가 좀더 필요해 보이는 시대다. 김방희 지음/토트/282쪽/1만 8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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