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까지 ‘당근’ 하는 고물가 속 추석 새 풍속도
명절 선물 세트 중고 거래 줄 이어
당국 물가 단속 엄포도 별무효과
채솟값 폭등에 가격표 재확인도
차례상 간소화 등 가성비가 대세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 서민들이 추석 선물 세트를 중고로 사고파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대형마트에서도 5만 원 미만 선물 세트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제사상을 간소화하는 등 올해 추석 소비문화는 ‘가성비’가 대세가 됐다. 길어지는 고물가와 경기 불황 여파에 풍성한 한가위도 옛말이 돼가는 모양새다.
8일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확인한 결과, 부산 각지에서 실시간으로 추석 선물 세트가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었다. 지난 7~8일 이틀 사이에만 참치, 스팸, 식용유, 샴푸, 과일부터 흑염소 진액, 김, 홍삼, 육포 등 각양각색의 선물 세트가 올라왔다.
대부분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상품이었으며 가격대는 소비자 가격의 30~50%의 5만 원 이하가 주를 이뤘다. 햄과 참치액 등이 들어있는 종합 선물 세트를 판매하는 한 게시글에서는 “쿠팡 최저가 28000원, 현대몰 40000원”이라고 정가를 밝히며 판매액 2만 원을 내걸었다.
판매 이유는 다양했다. 회사 선물로 받은 것을 재판매하거나 선물용으로 산 물건 수량이 남아 판다는 글 등이 주를 이뤘다. 지인과 가족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종이 가방이 있거나 포장 상태가 좋은 경우 사람들의 관심도는 더 높았다. 한 식용유 선물 세트 판매 글에서는 “회사에서 받았는데 먹지 않아 판다. 포장 그대로라 선물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선물 목적이 대부분이라 포장의 흠집은 가격 차감 요인이 된다. 한 스팸 선물 세트 판매 글에서 작성자는 “종이 가방에 스티커를 떼다가 자국이 생겨있다. 그만큼 차감해서 올린다”고 적었다.
선물로 받은 선물 세트 거래가 흔한 일이 됐듯이 올해 추석 소비문화 키워드는 ‘가성비’라 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23~2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물 선택 기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모든 연령대가 ‘가성비’(68.2%)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꼽았다. 경기 불황과 고물가 여파로 전 연령대에서 알뜰 소비 성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중저가 추석 선물 세트에 수요가 쏠리며, 1만 원대 김 선물 세트, 9000원대 양말 세트 등 초저가 선물 세트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롯데마트에서 지난달 1일부터 28일까지 추석 선물 세트 예약 판매를 분석한 결과, 3만 원 미만 가격대 매출은 약 50%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1만 원 이하 김 선물 세트는 수산 부문 판매량에서도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홈플러스에서도 9000원대 양말 세트 매출이 47% 뛰고, 이마트의 전체 매출 1위는 3만 원대 식용류·조미료 세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물가 시대 추석 선물 부담이 초저가 상품 쏠림 현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가위 명절에서조차 ‘가성비’를 찾는 세태는 고공 상승하는 물가 탓이다. 부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식탁 고물가에 놀라는 시민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 게시글에서는 시금치 350g에 가격표 1만 3000원이 찍힌 사진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제 평생 이런 가격 처음 본다”며 “오죽하면 마트 직원을 붙잡고 가격이 잘못 찍힌 것 아니냐고 몇 번을 물어봤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작성자는 “오늘 부전시장에 갔더니 배추 한 포기 1만 2000원으로 붙어있어서 한참 서서 동그라미를 다시 세 봤다”는 글을 올렸다. 실제로 폭염 등으로 출하량이 감소한 배추, 무 등 채소류 가격은 한 달 새 20%가 올랐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의 재룟값이 일제히 오르며 시민들은 제사상 간소화를 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수영구 광안동 한 마트에서 장을 보던 이 모(67) 씨는 “배추 한 포기, 애호박 하나 모두 가격이 놀랄 만큼 뛰어서 예전 같이 차리고 싶은 것 다 차리기가 무섭다”며 “이번에는 제사상에 가족이 먹을 최소한의 음식만 해서 올릴 예정이다”고 털어놨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