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깝지만 낯선 동네 ‘서동'에 청년 발길 닿도록” 송병근 고개서동 대표
옛 고향집에 이색 공유 공간 조성
여관·주방·영화방·서재 등 만들어
“도시재생에서 중요한 것은 조화
방문객은 추억 쌓고 동네는 살아나길”
“아이고 많이 컸네.” 부산 금정구 서동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어르신이 청년에게 와락 반가움을 표했다. 답인사를 건넨 청년은 “어릴 때 어머니가 운영하던 슈퍼에 자주 놀러 오시던 이웃이었다”고 소개했다.
‘30대 청년’ 송병근 고개서동 대표는 이곳 서동에서 나고 자랐다. 서동은 1960년대 영주동과 충무동 판자촌에서 살던 철거민들이 이주해 왔던 오래된 동네다. 금사공단과 서동시장 덕에 늘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공단이 쇠락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이 늘었다. 좁다란 골목길에 따닥따닥 붙은 3~4층짜리 가옥들만 옛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송 대표가 살던 집도 그중 하나였다. 4층 건물의 1층은 어머니의 슈퍼였고, 9명 대가족은 4층에서 시끌벅적 부대끼며 살았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아래서도 개성이 강했던 삼촌과 고모들을 보며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치기공학과 출신인 송 대표는 정해진 진로를 뒤로하고 일찍부터 창업에 눈을 떴다. “26살 때 친구들과 함께 창업 팀을 결성했어요. 방을 하나 빌려 합숙하면서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어가며 아이템을 구상했습니다. 미래에는 3D프린터가 유망하다기에 뛰어들었죠.”
송 대표는 “결론적으로 3년간 번 돈이 거의 없었다”며 “주변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어머니가, 예전에 살던 집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사람이 오게끔 좀 만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3년간 창업 모델 분석도 했거든요. 당시 서울에 있던 셰어하우스 모델을 보고 비어 있던 집을 셰어하우스로 만들었습니다.”
셰어하우스는 한두 달 만에 꽉 찼고 4호점까지 확장했다. 이후 부산과 양산에 공유독서실 ‘블루닷라운지’를 운영하면서 셰어하우스를 중단했다. “독서실은 잘 됐지만 집이 다시 비게 된 거죠. 그즈음 서동에 살던 친척 어른들도 한 분씩 돌아가셨어요. 고향에 남겨진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더라고요. 그래서 3년 전 ‘고개서동’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비었던 집은 독특한 공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숙박 공간 ‘서동여관’, 영화 감상실 ‘서동영화’, 공유 주방 ‘서동부엌’이 각 층에 들어섰다. 공간 하나하나, 송 대표가 직접 꾸미고 관리한다. 가장 인기가 좋은 서동여관은 ‘취향의 방’ ‘그림의 방’ ‘필사의 방’ 등 세 가지 테마로 만들었다. 서동여관은 문을 연 이후 주말 예약이 없던 적이 없었고, 여름에는 평일도 예약이 꽉 찬다.
“타지역 사람이 많이 옵니다. 할머니집 감성이라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신혼여행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필사의 방에 편지를 남겼어요. 오르막을 올라오는 게 힘들었지만 쉬다 보니까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요. 서동 고개로 올라오면 눈앞에 하늘이 보이거든요.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아요.”
최근에는 서동에 공유 공간 하나를 더했다. 서동여관을 찾은 이들이 동네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동고개 버스정류장 앞 건물 1층에 공유 서재 ‘서동문방’을 열었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개서동의 공간들은 ‘금정구 지역자원 연계 인구활력 이음 사업’ 공모에도 선정됐다. 청년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습관을 형성하는 ‘리츄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동문방에서 글쓰기 모임, 서동부엌에서 베이킹과 소셜다이닝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 모임이 열린다.
송 대표는 고개서동 프로젝트의 목적은 “로컬 자원을 활용해 동네를 쓰임 있게 만들고 서동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 자체가 로컬 크리에이터, 즉 도시 재생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또 개인이 이런 프로젝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다른 지역에서도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목표도 있었고요.”
송 대표는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살면 동네에 활력이 생길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정작 주민들은 민원을 넣기도 하더라고요. 도시재생 관점을 확장이나 발전에만 두면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본래의 것들과 조화롭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송 대표는 고개서동 외에도 부산·양산코딩스쿨 운영과 창업 교육을 하고 있다. “멈춰 있으면 불안하고 계속 바꾸고 싶어하는 게 한계이면서 장점이에요. 고개서동의 공간들도 아마 바뀔 거예요. 다양한 창업 프로젝트도 진행형입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