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청년 증가… 숨은 미취업 이유 찾아야
지역노동사회연구소 세미나
‘워라밸’ 중요시해 ‘프리터’ 선호
높은 실업률·일자리 미스매치 속
젊은 층 요구 반영한 정책 필요
“저는 개인 시간 보장이 최우선이라 근무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지금 일에 만족해요.”
부산 금정구 의류 매장에서 파트 타임 근무를 하고 있는 이 모(29) 씨. 20살부터 해오던 의류 서비스업 경험을 바탕으로 사촌 형이 운영하는 의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씨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 또는 오후 8시까지, 주 5~6일을 근무한다. 이 씨의 일정을 풀타임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근무 시간이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씨는 근무 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좋다는 점에서 현재 일에 만족한다. 이 씨가 아르바이트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워라밸만 보장된다면 정규직으로 취직할지도 모르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대책 마련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청년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진입과 유지를 위해 그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지역노동사회연구소의 ‘지역 청년 일자리 및 유출 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 8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의 51.5%가 ‘프리터’(freeter)가 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프리터는 ‘자유로운(free)’과 ‘아르바이트생(arbeiter)’의 합성어로, 돈이 필요할 때만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을 말한다.
정부는 그동안 청년 취업자 감소 원인으로 인구 감소, 산업구조 변화, 정년 연장에 따른 퇴직 감소 등을 꼽았다. 하지만 청년들의 입장은 다르다. 취업을 해도 일자리의 질이 낮다는 것이다. ‘프리터가 될 의향이 있다’고 답한 51.5%의 청년 중 가장 많은 32.1%는 ‘내가 원할 때만 일하고 싶어서’는 이유를 꼽았다. ‘조직생활이 답답해서’(18.2%),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어서’(18.1%) 등을 선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취업 의사가 있어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다. 청년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로 구직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하구에 살고 있는 김 모(29) 씨는 대학 졸업 당시 격식을 갖춰야 하는 직장 문화를 꺼렸다. 김 씨가 처음 선택한 일은 프리랜서 수학 강사다. 수학 강사 퇴직 후 김 씨는 계약직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김 씨는 정규직 직장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구직 과정에서 경력 부족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김 씨는 “경력을 가진 이를 선호하는 기업이 많아 힘들다”며 “경력을 쌓거나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그냥 쉬는’ 청년이 늘어난 현상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남경제투자진흥원 서선영 경제분석센터장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며 개인의 선택에 대한 무한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청년 세대가 불안감을 떠안게 됐다”며 “청년 실업의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청년마다 다른 미취업 사유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산연구원 김세현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그냥 쉬었다는 답변 기저에 깔린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대한 추가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며 “현재는 고용과 관련된 청년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사회가 변화하며 워라밸 등 청년의 요구 사항에 맞춘 새로운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