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폭염 탓? 제철 맞은 굴 양식 업계, 소비 부진에 생산·채묘난 ‘3중고’
굴수협 14일 2024년도 햇굴 초매식
늦더위 기승 탓 아직 시장 형성 안 돼
‘이상 해황’ 폐사 피해 예상보다 심각
전체 출하 물량 20~30% 감소 전망
공급 차질로 가격 인상 시 소비 위축
채묘도 상당량 폐사…내년 출하 차질
제철 맞은 경남 지역 굴 양식 어민들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해야 하는데, 애초 평년 수준으로 판단했던 폐사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 여기에 역대급 폭염 후유증과 뒤끝 무더위에 소비도 얼어붙은 데다, 배추 등 채소값 폭등으로 ‘김장 특수’ 역시 예년만 못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어민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생굴 생산자 단체인 굴수하식수협은 오는 14일 2024년도 햇굴 초매식을 연다. 초매식은 수협 공판장에서 진행되는 첫 경매 행사다. 겨울이 제철인 굴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이 기간 통영과 거제, 고성 앞바다에선 4만여 t에 달하는 생굴이 수확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지역 경제 낙수 효과도 상당하다. 생굴을 생산하는 박신장만 300여 곳, 가공시설까지 포함하면 연관 산업 종사자는 줄잡아 1만 20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정작 어민들 표정은 밝지 못하다. 보통 9월 하순이 되면 수도권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선주문이 밀려든다. 이맘때 제철 수산물로 내세우기에 생굴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박신장도 이에 맞춰 인부들을 확보해 작업을 개시한다. 하지만 올해는 전에 없이 썰렁한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 장기화와 고물가에 소비재 시장이 냉골이다. 기호성이 강한 수산물은 부침이 더 심하다 보니 유통업계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굴은 찬바람이 불어야 소비가 살아나는데, 지난달 말까지 늦더위가 이어지면서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물량 수급도 비상이다. 지난여름 고수온에 어류와 멍게 어장은 초토화됐지만, 굴 양식업계는 작황이 나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굴은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온 변환에 둔감한 탓이다. 오히려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성장은 더 잘됐다.
진동만과 자란만 일부 해역 양식장에서 ‘산소부족물덩어리(빈산소수괴)’ 피해로 추정되는 폐사가 일부 확인됐지만 평소보다 심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딴판이었다. 10일까지 경남도에 접수된 양식 굴 집단 폐사 신고는 모두 600여 건, 피해 면적은 1130ha에 달한다. 이는 도내 전체 굴 양식장(710건, 3466ha)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피해 어장 평균 폐사율은 60%, 심한 곳은 90%에 육박한다. 추정 피해액은 140억 원 이상이다.
업계는 고수온에다 빈산소수괴까지 덮치면서 뒤늦게 폐사를 유발한 것으로 본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은 “30도를 웃도는 바다는 굴도 버거운 환경인데 무려 한 달하고도 보름 넘게 지속됐다”면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 청수가 들면서 골병이 든 듯하다”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도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해황 등 복합적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어민들은 노심초사다. 평년 대비 20~30%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뜩이나 소비가 주춤한 상황에 가격까지 오르면 아예 외면 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관건은 김장철이다. 굴 업계는 수도권 김장이 시작되는 11월 중순에서 남부 지방 김장이 마무리되는 12월을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는다. 그러나 직접 김치를 담그는 가정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배추 등 주요 김장 재료 가격까지 껑충 뛰면서 과거 만큼의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남해안 굴 양식업계는 6~8월 사이 채묘한 어린 굴로 이듬해 수확할 물량을 확보한다. 채묘는 굴 종자를 가리비나 굴 껍데기에 부착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채묘들이 고수온을 버티지 못해 떼죽음했다. 이대로는 씨앗이 없어 농사를 못 짓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 조합장은 “남은 채묘를 모두 합쳐도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얼마나 살아남을지 미지수”라며 “성체 피해에 대한 신속한 복구 지원과 함께 다양한 육종 연구를 통해 기후 변화를 극복할 우량종자를 개발, 보급할 전담 기관 신설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