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대모’ 박경리 동경하는 일본 팬들 통영 온다
‘토지’ 일본어판 완역 출간 기념
선생 고향 통영 묘소서 헌정식
경남 통영 출신으로 ‘한국 현대 문학의 대모’로 평가받는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역작 <토지> 전권이 일본어로 완역 출간됐다. 새로운 이정표를 기념해 현지인들로 구성된 ‘토지독서단’이 선생의 고향을 찾아 헌정식과 출판기념식을 열기로 했다.
17일 지역 문화계에 따르면 일본 쿠온출판사가 최근 20권으로 구성된 소설 토지 일본어판 출간 작업을 완료했다. 2016년 1, 2권 완역 출간 이후 꼬박 10년 만이다.
소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에 걸쳐 집필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총 5부, 25편에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기를 아우른다.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로도 불리는 대작이지만 방대한 분량 탓에 실제 완독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쿠온출판사가 이를 완역했다.
일본어판 번역은 요시카와 나기(吉川凪)와 시미즈 치사코(清水知佐子)가 맡았다. 요시카와 나기는 인하대 국문과에서 한국 근대문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소설 전문 번역가다. <신경림 시선집 낙타를 타고>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이만큼 가까이> 등이 그의 번역을 거쳤다. 여기에 <조선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 <경성의 다다, 도쿄의 다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시미즈 치사코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 18년간 요미우리신문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 한국문학 번역가가 됐다. 대표 번역서는 <조선의 여성(1392-1945)-신체, 언어, 심성>이다.
공동 번역이지만 두 사람이 한 권씩 따로 번역을 맡았다. 사투리는 표준어로 통일하고 인명은 일본 독자들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급적 한자 표기를 했다. 권마다 책갈피를 만들어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과 역자 해설도 넣었다. 12권 끝에는 만화판 삽화를 수록해 한국의 옛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되도록 배려했다.
감수는 김정출 미노리병원장(세이큐학원 쓰쿠바 중고교 이사장)이 맡았다. 김정출은 제작비를 일부 지원하기도 한 조력자다. 편집은 후지이 히사코(藤井久子), 교정 교열은 박나리 씨가 담당했다.
일본어판 완간을 기념해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를 비롯한 번역가와 편집자 그리고 일본 독자단이 19일 선생의 고향인 통영을 찾는다. 일행은 이날 오후 선생 묘소에서 헌정식을 하고 출판기념회도 연다.
김 대표는 “2014년 토지문화재단과 일본어판 협의를 끝낸 날, 벅찬 마음에 한달음에 선생 묘소를 찾았었다”며 “작업에 앞서 번역팀과 원주, 하동을 둘러보며 각오를 다지고, 연변,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한 끝에 드디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어판 1, 2권을 동시에 발행했던 2016년에 일본 독자 30여 명과 함께 박경리 선생 묘소에 책을 헌정하고 조촐한 기념식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며 “그때 20권을 다 만들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야 지키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한편, 쿠온(CUON)은 한국인 김승복 대표가 2007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다. 일본어로 구원, 영원을 뜻하는 단어인데 ‘좋은 것은 오래 간다’는 의미가 담겼다. 2015년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책거리’를 연데 이어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한국문학 명작 시리즈’ 등을 통해 120여 종을 일본어판으로 선보였다. 이 중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신경림, 구효서, 김연수, 김중혁, 박민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