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탄핵 땐 반도체·중국 호황…지금은 안팎으로 경제 불투명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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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당시 반도체 슈퍼사이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수출 호조로 충격 흡수
지금은 내수부진, 트럼프2기 출범 등 불확실

헌법재판소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사진은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사진은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연합뉴스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지난 10일간 극히 불투명하던 정국의 향방이 일단 정리가 됐다. 하지만 경제에 미친 충격은 당분간 여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거 두 차례 탄핵 때는 소비와 주가 등이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었다가 대체로 반년 안에 안정을 되찾았다. 특히 과거엔 중국이나 반도체 특수가 경제를 떠받치던 시기로, 경제 환경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수회복이 안되는 상황에서 수출까지 둔화하는 상황이라서 어려움이 오래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판결을 받았다. 당시 탄핵 가결로 가장 크게 위축된 경제 분야는 민간 소비였다.

2016년 2분기와 3분기 각 3.4%, 3.3%에 이르던 소비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탄핵이 가결된 4분기에 1.6%로 추락했다. 하지만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4분기 0.8%로 3분기(0.4%)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소비 급감에도 경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데는 설비투자 덕이 컸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3분기에 2.2%(전년동기 대비)에서 4분기 11%로 뛰었다. 2017년 1분기엔 20.6%까지 치솟았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2017년 당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초기였기 때문에 민간 소비 증가율이 4분기에 큰 폭으로 떨어졌어도 설비투자가 10%, 20%가 넘는 증가율로 전체 경제 성장률 하락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원·달러 환율은 정치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6년 9월 1100원대였던 환율은 계속 오르더니 탄핵 가결 이후 12월 말 1207.7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듬해 1월 3일 고점(1211.8원)을 찍고 내려서 3월 10일 탄핵 인용 당일에는 1157.4원까지 떨어졌다.

종합주가지수(코스피) 역시 단기적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탄핵 가결을 기점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정치 이슈보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조 등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은 등의 분석이다.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경제 파장은 상대적으로 더 작았다. 3월 12일 국회의 탄핵 의결부터 5월 14일 헌법재판소 기각까지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이때 정치적 충격을 흡수한 것은 중국 특수에 따른 수출 호조였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들어와 2004년 세계 공장으로서 한창 활기를 띠던 시기”라며 “우리나라 수출도 그 수혜를 입던 때라 탄핵의 경제 타격이 크게 없었다”고 진단했다.

박정우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도 “당시 강력한 중국 수요로 통관 기준 수출이 탄핵 사태 기간에도 전년동기 대비 30%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한은과 정부는 이런 과거의 사례를 근거로, 이번 비상계엄 이후 정국 혼란 역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5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단기적으로 끝날지 길게 갈지 불확실성이 있다”며 “과거 경험으로 미뤄 길게 가더라도 정치적 프로세스와 경제적 프로세스가 분리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데이터를 보면 중장기 영향이 크게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의 처지가 과거 두 차례 탄핵 사태 당시와 크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2004년 중국이나 2016년 반도체와 같은 ‘비빌 언덕’이 없는 데다 내수 회복은 미미한데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수출 증가세까지 꺾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수출 경기가 둔화하는 국면에서 내수 역시 건설경기 부진과 소비둔화 등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경제 전반에 미칠 탄핵 충격을 흡수할 마땅한 완화 장치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4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1조 349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선포 직후 1440원대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1430원대 안팎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은 탄핵 정국을 빨리 수습해 경제 정책의 공백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와 한은이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지 않을 경우, 경기 하락 흐름을 막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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