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부터 녹색국채까지… 지속가능금융 꿈꾸는 독일[33조 녹색채권 어디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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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조 녹색채권 어디에] 5. 녹색금융 방향 찾아

기업·학계 등 34명 금융위 구성
과반 이상 동의 얻어야 결론 도출
그린워싱 방지·시장 활성화 목적

녹색국채 기존 채권과 교환 가능
투자 가치 있는 자산 인식 심어줘
자본시장서 유지 발전시키는 전략

녹색채권 등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금융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가 충돌하는 여러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감시체계의 강화뿐만 아니라, 증권 발행자와 투자자 각 입장에서의 발행·투자 유인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친환경 선진국인 독일은 정부의 지속가능한 금융 정책을 자문하는 위원회에 이해관계가 다른 각계를 참여시켜 토론하는 공론장을 구성했다. 또 국채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녹색국채를 발행하고 있고, 쌍둥이 구조라는 독특한 컨셉을 통해 투자를 유인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지속가능금융자문위원회(Sustainable Finance Beirat) 질케 슈트렘라우 위원장. 손혜림 기자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지속가능금융자문위원회(Sustainable Finance Beirat) 질케 슈트렘라우 위원장. 손혜림 기자

■ 녹색 전략 감독하는 토론기구

“금융계, 기업, 시민사회, 학계가 모여 짧으면 4주, 길면 9개월 넘게 치열하게 토론합니다. 그렇게 도출된 자문 의견은 정부의 지속가능한 금융 정책에 흘러들어가는 구조입니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지속가능금융자문위원회(Sustainable Finance Beirat) 질케 슈트렘라우 위원장은 위원회가 의견을 결정하기까지 거치는 지난한 토론 과정을 설명했다. 슈트렘라우 위원장은 “34명의 자문위원으로부터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결론이 내려진다”며 “각기 다른 입장을 대표하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다”고 설명했다.

녹색채권을 포함한 지속가능금융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 사이에서 자본의 뜻대로만 굴러가기 쉽다. 위원회는 금융 정책에 모두의 의견이 균형있게 반영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지난 2019년 탄생한 대안적 조직이다. 2022년 2기를 출범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위원회는 34명의 자문위원과 19개 감시기관으로 구성된다. 위원회의 제언은 독일 정부가 지속가능한 금융에 관한 정책 의사결정을 할 때 바탕자료가 된다. 앞서 위원회는 ESG 금융상품에 대한 지속가능성 지표를 나타내는 일명 ‘ESG 신호등 체계’를 건의했고, 이를 독일 정부가 받아들여 유럽연합에 건의하기도 했다. 슈트렘라우 위원장은 “2018년 유럽연합이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제시하면서 독일 또한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며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가 지속적으로 생겨나는데 대해 독일 내 금융권 로비 연합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황이었고, 은행 업계에 비해 NGO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녹색채권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만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그는 “기업들은 녹색채권 규제가 너무 심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결국 (기업 수익구조 개선에) 큰 효용이 없다고 원성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데에는 마케팅 목적이 분명 있다. 회사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효용이 없는데도 발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녹색 금융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적정선이 핵심이다. 그 선을 찾는 과정은 정부의 ‘넷 제로’에 대한 명확한 장기 플랜 아래 각계의 토론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슈트렘라우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대화 플랫폼'인 지속가능금융자문위원회는 녹색 금융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받쳐주는 기반이 된다. 슈트렘라우 위원장은 “너무 엄해서도 안되고, 필요한만큼 하되 발행인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이 정말 ‘그린’한가에 대한 기준 또한 투자자 관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놓쳐서도 안된다”며 “그 적정선을 찾아야 하고, 그 적정선을 찾기 위해 우리는 토론한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자본시장 감시단체 피난츠벤데(Finanz Wende) 막달레나 젠 연구원. 손혜림 기자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자본시장 감시단체 피난츠벤데(Finanz Wende) 막달레나 젠 연구원. 손혜림 기자

앞으로 그린워싱에 대한 제재가 훨씬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독일 자본시장 감시단체이자 위원회 감독기관인 ‘피난츠벤데(Finanz Wende) 막달레나 젠 연구원은 “유럽연합의 택소노미가 적용되어도 가장 우려스러운 건 기업들이 그 가이드라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주로 활용하는 ICMA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자본시장 입장에서 만든 기준이고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그린워싱에 대해 금융사기에 준하는 제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독일 연방재정공사 탐모 다이머 박사. 손혜림 기자 지난 10월 독일 현지에서 만난 독일 연방재정공사 탐모 다이머 박사. 손혜림 기자

■ 녹색 금융 성장 이끄는 녹색국채

독일은 2020년부터 녹색국채를 발행했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투자에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녹색국채 발행을 통해 이를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독일 국채는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전체 유로 시장에서 금리 지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당국은 녹색국채 또한 녹색 금융시장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연방재정공사 탐모 다이머 박사는 “자본시장에는 수익성, 위험, 유동성 등 3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4번째 요소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녹색국채를 발행한다”며 “정부의 지속가능성 전략에서 더 나아가, 녹색국채를 발행해 자본시장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녹색국채가 취하는 독특한 ‘쌍둥이 구조’는 이정표 역할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녹색국채는 동일한 만기와 이자율을 가진 기존의 국채와 함께 발행되며, 별개의 국제증권식별번호(ISIN) 코드를 갖는다. 기존 채권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실제로 교환을 일으키려는 목적 보다 녹색국채가 투자할만한 자산임을 보여주는 장치다.다이머 박사는 “비용이 저렴하면서 믿을만한 플랫폼을 만들려면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투자를 발생시켜야 한다”며 “교환 가능하다는 개념은, 투자자 입장에서 녹색국채가 더 저렴해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약속을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다. 언제든 환수해 다시 일반 국채로 팔 의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 데이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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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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