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구멍 숭숭 뚫린 헌법’ 메우는 헌법재판소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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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년 된 현행 헌법, 시대상과 갈수록 괴리
헌법 허점, 그동안 헌재 결정으로 겨우 봉합
비상계엄 사태 맞아 여야 정치권도 헌재 의존
모든 정치적 갈등 처리의 해우소 돼선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는 우리나라 헌법 기관에도 대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법 기관의 구성과 권한을 둘러싼 논쟁과 다툼이 폭발하면서 이를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존재감이 급격히 높아졌다. 헌법과 관련된 정국의 핵심 이슈 대부분이 헌재로 향하면서 지금 헌재는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상태나 다름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의 40년이 된 낡고 해진 우리 헌법의 숭숭 뚫린 구멍을 헌재가 가까스로 메우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 헌정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 등 국정의 향방을 가를 열쇠를 쥔 곳이 헌법재판소다. 비상계엄 이후 헌재는 헌정과 관련한 모든 갈등의 해결사로 떠오르면서 우리 헌법의 허점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 등 국정의 향방을 가를 열쇠를 쥔 곳이 헌법재판소다. 비상계엄 이후 헌재는 헌정과 관련한 모든 갈등의 해결사로 떠오르면서 우리 헌법의 허점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 ‘호떡집에 불난’ 헌재

헌법재판소의 근거는 우리 헌법 제6장에 나온다. 국가 기관으로 국회가 가장 먼저 등장하고 이어 대통령과 행정부에 관한 규정인 정부, 사법권을 담당하는 법원에 이어 헌법재판소 항목이 보인다. 관련 조문은 111조부터 113조까지 3개로, 하부 항목도 총 10개에 불과하다. 다른 주요 기관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지금 정국에서 헌재의 존재감이나 역할은 다른 기관을 압도한다. 여야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도 헌재의 결정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감사원장 등 헌법 기관들의 탄핵 사건이 줄줄이 헌재 재판관들의 책상에 놓여 있다. 여기다 헌법 기관이 행한 권한 행사의 적법성 여부를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 사건도 한둘이 아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에 계류 중인 탄핵 사건만 10건으로, 법정 처리 기한인 180일을 지키려면 올해 안에 이 모두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2025년은 1988년 개소한 헌재가 가장 많은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해야 하는 해라고 하니 그 고충이 짐작이 간다. 다행히 결원 재판관 2명이 지난 연말 임명돼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해도 헌재의 업무 과부하는 상수가 됐다.


1987년에 마련된 현행 헌법이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현실과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헌재가 이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마저 한계를 맞고 있다. 지난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 모습. 연합뉴스 1987년에 마련된 현행 헌법이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현실과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헌재가 이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마저 한계를 맞고 있다. 지난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 모습. 연합뉴스

■ 낡은 ‘87년 헌법’, 헌정 부담으로

헌재에 청구되는 사건은 국가 주요 기관과 관련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반 국민도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구제를 헌법소원 형식으로 헌재에 제기한다. 매년 접수되는 헌법소원 건수만 3000건에 육박한다. 정원이 9명인 헌재의 인적 구성으로는 국민의 헌법 수요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헌재의 상황이 여기까지 이른 데는 1987년에 마련된 현행 헌법 자체의 한계 탓이 크다. 제정된 지 40년 가까이 지나면서 헌법과 변화된 사회상 사이에 간극이 커졌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을 현행 헌법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약 40년 전의 헌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헌재의 결원 재판관 보충,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문제 등 여야 간 극심한 갈등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현행 헌법은 부칙을 제외하고 총 130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 130개 조문에 대한민국의 운영 원칙이 담겨 있다. 그런데 국가 운영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면서 곳곳에서 허술함이 발견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우리 헌법의 민낯을 온 국민에게 드러냈다.

여기다 시대상이 바뀌면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판단을 정립해야 할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의 규정력은 전혀 이를 담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 최대의 현안으로 부상한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문제는 물론이고 국내로도 급속한 고령화, 지방소멸, 저출산, 낙태와 안락사 등 생명권, 이주 외국인 등 한둘이 아니다. 현행 헌법의 규정력이 미치지 못하다 보니 이와 관련한 분쟁 해결은 거의 헌재의 몫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1987년 헌법 체제의 많은 허점은 헌재의 결정으로 겨우겨우 메워져 왔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처는 이제 분명한 한계를 맞았다. 헌법의 허점을 일일이 헌재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21세기에는 전혀 맞지 않다. 헌재의 역할은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헌재가 헌법과 관련한 모든 정치적 갈등을 처리하는 해우소가 돼서도 안 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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