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안과 하인리히법칙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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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여행자보험회사에 근무했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7만 5000건의 산업 재해 인과관계를 분석해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한다.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전에는 부상을 일으키지 않은 300번의 가벼운 실수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큰 재난이 발생하기 이전에 수십 차례의 작은 사고와 수백 번의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1931년 ‘1:29:300’이란 ‘하인리히법칙’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를 초기에 잘 대처하면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지만, 방치할 경우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고한 하인리히의 법칙은 건설 현장은 물론이고 재난과 안전사고, 정치, 팬데믹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무안 참사에서 “조금만 조심하고, 예방했더라면…”이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장탄식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실제로 제주항공 참사가 조류 충돌에 따른 엔진과 랜딩기어 고장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하지만, 안전상 허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안전 문제를 소홀히 다룬 인재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고 여객기는 제대로 된 정비가 쉽지 않을 만큼 쉴 새 없이 운항했다고 한다. 비행기 가동률이 높은 제주항공의 무리한 운항과 부실 정비 등이 안팎에서 거론되는 이유다. 심지어 참사 하루 뒤에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랜딩기어 이상으로 회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단에 설치된 로컬라이저의 콘크리트 둔덕이 비행기가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면 피해를 훨씬 줄였을 거란 아쉬움도 나온다. 철새 도래지로 둘러싸인 공항임에도 조류 탐지레이더 등의 안전설비조차 없었다는 사실과 무안공항 등 전국 14개 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가 지난 8개월 동안 사장 직무대행 체제였다는 점도 드러났다. 게다가, 공항공사 임원진 대부분이 전문성이 전혀 없는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고 한다. 국민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역대 정권의 전리품이었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만 해결했더라면 179명은 가족과 함께 새해 덕담을 나누지 않았을까. 세월호 침몰,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불감증, 전시 행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안전 시스템의 실패가 무안 참사인 까닭이다. 2025년 새로운 해가 뜨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떠난 179명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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