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표류한 사람들 이야기를 엮다
<동북아해역 표류인…> 출간
필답 의사소통 인터뷰 형식
전근대 동아시아 이해 도움
헌종 13년 1847년 7월 9일 전북 부안 계화도 근처 골짜기에 프랑스 선박 2척이 표착했다. 전라감사 홍희석이 비변사에 올린 장계에 따르면 당시 좌초된 군함 두 척의 이름은 글로아(Gloire)와 빅토리아(Victorieuse)였고 두 배에 탄 사람이 600명이었다. 배에는 모두 화약과 화포가 있었다. 비변사는 “프랑스인들이 쌀과 곡식을 달라고 간청해 왔습니다. 심문해 보기 전에 지급하지 않는 것이 전례이지만 정황을 헤아려 먼저 먼 지방 사람을 너그럽게 대한 뒤 심문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서울의 역관 한 사람을 뽑아 속히 내려보내도록 분부하심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왕에게 아뢰었다.
전근대 동북아시아 해역네트워크 현상의 한 사례로서 표류기(표해록)에 주목해 온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김창경)이 <동북아해역 표류인 취재 기록>(소명출판)을 출간했다. <아시아의 표해록>(2019)을 필두로 <조선표류일기>(2020), <청국표류도>(2022)에 이어 네 번째 번역 출판물이다.
<아시아의 표해록>은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대표적인 표류 기록을 모은 것이고, <조선표류일기>는 일본인들이 조선에 표착한 뒤 귀국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청국표류도> 역시 일본인들이 중국 곧 청나라에 표착했다가 일본으로 돌아간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세 권의 표해록은 모두 표류 당사자 또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기록해 준 이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해상 활동은 꾸준히 있었지만 이들은 대체로 식자층이 아니어서 조난을 당한 뒤 무사히 귀환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록으로 남는 일은 많지 않았다. 표해록은 조난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구사일생을 한 사람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동북아해역 표류인 취재 기록>은 동아시아 지역의 표류인 인터뷰를 모아보자는 기획에서 출발해 <고려풍속기>(高麗風俗記·1741)와 <유방필어>(遊房筆語·1780)를 수록했다. 중국의 <고려풍속기>는 중국 절강(浙江)에 떠내려온 조선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기록했고, 일본의 <유방필어>는 일본에 표류한 중국인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사적으로 이국의 표류민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위의 두 책과 같은 자료를 발굴할 수 없었다. 대신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혹은 각 지방지와 같은 공적인 조서와 기록에 전해지는 기록을 통해 국내 최초로 조선·중국·일본의 표류인 인터뷰 기록을 한 권으로 엮었다는 것이다.
김창경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단장은 “이 책은 표착 국가의 지식인이 표류민을 살피고, 필답으로 의사소통하고, 인상과 감회를 적은 인터뷰 형식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한·중·일 각 나라에서 자국의 영토에 떠내려온 외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했는가를 비교해 봄으로써 전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타자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