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우리가 시위에 나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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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민주화운동 직접 경험 없지만
교과서로, 소설로, 영화로 배워

2030세대의 집회 참여 의미는
민주국가의 교육 잘 받았단 뜻

한 나라의 책임 있는 국민으로
권리를 올바르게 사용하고파

8년 전쯤 어느 날, 대학교 동아리방에 들어섰을 때 마주했던 장면이 생생하다. 친구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그 친구가 손에 들고 있던 책은, 미래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였다. 그 책이 그렇게 슬프냐고 묻는 내게, 친구는 밑줄을 그어놓은 몇 구절들을 읽어줬다. 살아본 적 없는 1980년 광주의 참혹한 이야기는 그렇게 ‘친구의 눈물’로 내게 각인됐다. 그리고 소설 속, 친구 ‘정대’를 잃은 ‘동호’의 괴로움으로 기억됐다. 그날 일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2024년 12월 3일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아닌 밤중에 ‘계엄’이라는 글자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떴을 때, 친구의 얼굴과 〈소년이 온다〉 책이 동시에 생각났다. 훅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포털사이트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니 시민들이 군인들을 막아섰다는 뉴스가 떴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건 실제 상황이다. 그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뉴스나 다큐를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생생하고 현실감이 느껴진 채로 그 일이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1996년도에 태어났다. 당연히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한 적 없다. 다만 역사 교과서 속에서, 소설책에서, 영화에서 배웠다. 힘 있는 자들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죄 없는 국민들이 죽었다는 것을 배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웠다. 실재 인물을 본뜬 이야기이든, 그저 캐릭터일 뿐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그저 그런 일이 불과 40여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함께 울고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래서 2024년에 마주한 참혹한 현실 앞에 거리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그들에게 빚져서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됐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소망하던 어느 토요일. 위아래로 히트텍을 챙겨 입고, 롱패딩을 껴입고, 양쪽 주머니에는 핫팩을 하나씩 넣은 채로 친구들과 길을 나섰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후 주변을 둘러보니 신기하게도 또래들이 많았다. 갑자기 신이 났다. 마치 노래방에 온 것처럼, 콘서트에 온 것처럼 빛나는 응원봉을 하나씩 손에 들고 목청껏 탄핵 구호를 외쳤다. 다들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을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시위가 끝난 뒤 이번 탄핵 집회를 20·30대 여성들이 주도했다는 분석 기사들을 많이 봤다. 혹 누군가 왜 시위에 나갔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건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선배들로부터 ‘절대 내줘서는 안 되는 가치’가 무엇이고, 그 힘이 무엇인지 너무 잘 배운 것 같다.

촛불로 정의를 바로잡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해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적 무기력증이 심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했다. 정치인들이 보기 싫은 건 내가 바라는 정치적 이상이 있기 때문이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건 한 국민으로서 목표가 있기 때문이고, 분노가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정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같은 마음을 느꼈기에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다.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던 1980년대를 직접 살았던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사람들이, 국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매도하고 무력과 폭력으로 힘을 찬탈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배운 우리보다 더 모르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이 그렇게 사수하려는 권력과 힘은 허상이다.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손에 쥘 수도 없다. 이제 잘못을 뉘우치고 국민들에게 힘이 있노라고 인정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소설책 〈소년이 온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2025년의 대한민국은 이와 반대로 기억되길 간절히 바란다. 밝혀진 것, 되찾은 것, 훼손될 수 없는 가치가 지켜진 것의 다른 이름이기를 바란다. 정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계엄 선포에 책임 있는 모든 자들이 발본색원되어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여전히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추운 겨울 눈을 맞으며 거리에 나가는 이들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나의 권리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싶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시위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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