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빠를수록 불평등이 커진다?
교육과 기술의 경주 / 클라우디아 골딘·로렌스 F. 카츠
교육 확대 vs 기술 발전 '달리기 경주'
교육의 확대 빨라야 불평등 줄어들어
AI 등 기술 발전 대한 교육 역할 고민
기술 발전이 빠를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이 무슨 황당한 논리인가.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노력 이상으로) 많이 가져가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기에 불평등이 발생한다. 만약 재화가 무한한 것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불평등은 사라질 수도 있다. 공기가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기술의 발전은, 비록 재화의 양을 무한하게 만들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같은 비용을 들여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을 늘여준다. 혹은 기존 재화보다 효용성이 높은 새로운 재화를 만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좀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기술 발전이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한다니,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렌스 카츠는 갈수록 심화하는 미국 내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해 <교육과 기술의 경주>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앞서 언급한 황당한 명제 ‘기술의 발전이 빠를수록 불평등이 커진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교육’이라는 또다른 구성요소를 언급한다.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교육과 기술이라는 두 요소가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저자들은 기술과 교육이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고 비유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교육의 진전 속도보다 빠르면 불평등이 커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불평등이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20세기의 첫 세 분기 동안 교육의 진전으로 인한 숙련 노동자의 공급 증가가 기술 변화로 인한 숙련 노동자의 수요 증가를 능가했다. 하지만 20세기의 마지막 20여 년 동안에는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요컨대, 20세기의 앞부분에선 교육이 기술보다 달리기 경주에서 빨랐고, 뒷부분에선 기술이 교육을 경주에서 앞질렀다. 그리고 앞부분에선 미국의 불평등이 감소했고 뒷부분에선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다만 저자들이 주목한 것은, 낚시질을 위한 이 글의 첫 문장과는 달리, 기술이 아니라 교육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큰 변화가 없는 ‘상수’와도 같고, 교육의 진전 속도라는 ‘변수’의 변화에 따른 사회 불평등의 관계에 주목했다. 1915년부터 2005년 사이 미국의 대졸 노동력 수요는 꾸준한 속도로 증가한 반면, 1915년부터 1980년까지 대졸 노동력 공급은 빠르게 증가했고 이는 임금 프리미엄을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졸 노동력의 공급 증가가 둔화하면서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 증가했다.
저자들은 말한다. “20세기 동안 추세에 크게 변화가 있었던 쪽은 수요 쪽이 아니라 공급 쪽이었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은 노동자의 공급 증가율 변화가 불평등 추세에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그리고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선 교육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취학 전 교육을 확대하고 유치원부터 고3까지 교육의 질을 높여 더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장학금 혜택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도 미국 못지않은, 아니 세상 어느 나라보다 더한, 불평등 사회다. 불평등이라는 많은 나라의 공통된 고민을 교육과 기술의 관계로 풀어낸 점이 새롭고. 그래서 신선하다. 또한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급속한 기술 발전이 노동의 성격과 일자리 수요를 어떻게 바꿀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은 무엇일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도 던진다. 클라우디아 골딘, 로렌스 F. 카츠 지음/김승진 옮김/생각의힘/664쪽/3만 3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