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뉴욕필 꿈꾸는 ‘네오필’… 350여 후원 손길로 유지 [부산의 민간 오케스트라]
<2> 부산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09년 창단, 전문법인 등록
사무국·경영진 갖춰 ‘독보적’
김종천 단장·홍성택 상임지휘
“뉴욕필도 ‘3·3·3’ 구조 운영
티켓·기부금 외 정부 지원을”
민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재정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직과 운영이다. 부산에서도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명멸했지만, 이와 관련된 공식 통계조차 없다. 정확히 몇 개의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이들이 연간 몇 회의 공연을 하는지 부산시조차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비단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거의 모든 민간 오케스트라가 처한 현실이다.
(사)부산네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네오필)는 올해 활동으로 총 7회의 정기 연주회와 자체 기획 음악회 외에 외부 연주를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오는 2월 27일 정기 연주회(신년 음악회)와 오는 5월 29일 (재)부산문화회관 기획 공연 ‘Sound of Busan: 브람스 교향곡 전곡 사이클’ 세 번째 순서로 참여한다.
■‘민간’ 뉴욕필도 정부 지원 ‘주목’
2009년 7월 1일 창단해 2015년 전문예술법인으로 등록한 네오필은 그나마 ‘조직’적인 민간 오케스트라에 속한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단장과 단무장, 사무국(공연기획, 홍보 및 마케팅 담) 체제를 갖춘 몇 안 되는 부산의 민간 오케스트라이다. 2015년 3월 네오필 2대 단장에 취임한 김종천(61) 영파의료재단 이사장은 그해 8월 네오필을 사단법인화했다.
“고정된 후원자 350여 명의 개인과 단체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민간 오케스트라는 부산에서 유일할 겁니다. 미래의 뉴욕필을 꿈꾼다고 할까요? 뉴욕 필하모닉이 1842년 설립됐는데, 180여 년 전의 뉴욕필이 저희와 거의 흡사한 형태였더라고요. 다만, 뉴욕필은 민간 오케스트라이지만 미 연방정부로부터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고요, 기부금 비중도 정부지원금의 배 가까이 됩니다.”
네오필은 고정 후원자가 내는 후원금은 연주 용도로만 사용하고, 다른 곳에서 모금한 돈으로 경상비를 조달한다. 개인 후원회원 1000명을 목표로 세웠다. 한 사람이 많이 내는 것보다 1만 원을 후원하는 1000명이 되면 좋겠단다.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단원들 4대 보험과 약간의 월급이라도 제공하던 부산 유일의 민간 오케스트라였다. 지금은 다른 민간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연주 수당제를 적용한다.
■사회적 기업 출발…시장통 공연도
네오필의 음악적인 부분은 홍성택(66)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책임진다. 네오필은 ‘느리지만 곧게 최고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로 정상급의 연주자와 협연을 통해 부산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현재 42명의 단원은 임병원(경성대 교수) 고문 겸 악장, 김은정 부악장, 우청일 바이올린 수석, 박소영(부산시향 단원) 비올라 수석, 구본룡(진주시향 단원) 더블베이스 수석, 유혜성 플루트 수석, 김준태 오보에 수석, 김상훈 클라리넷 수석, 최영준 바순 수석, 권오준(경산시향 단원) 호른 수석, 최수용 트럼펫 수석, 손무정(경산시향 단원) 트롬본 수석 등이다.
서울대 기악과(클라리넷) 출신의 홍 지휘자는 부산시향 수석 클라리네티스트를 역임했다. 프랑스에서 클라리넷과 지휘 공부, 러시아 그네신 국립음악원에서 지휘자 석사과정을 밟은 후 2009년 네오필을 창단했다. 2010년부턴 지휘만 전념하고 있다. “부산YMCA와 함께 5년간 사회적기업으로 경험을 쌓고, 2014년 독립 민간 오케스트라로 새출발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이라 정부 지원금의 일정 비율 이상 수익을 창출해야 했는데 매년 매년이 고비였습니다. 특히 2012년 겨울 서동시장 공연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시장 상인 등이 모두 흥겨워하는 등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상주단체 쫓겨나는 아픔도 겪어
서동시장 공연을 계기로 2013년 금정문화회관 상주단체가 되면서 안정적인 연습실과 정기적인 공연 일정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법인 전환과 부산시 전문예술단체 등록 등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018년 구청장이 바뀌면서 네오필의 상주단체 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오갈 데가 없어진 네오필은 김 단장 개인 소유 건물에 연습실과 사무실을 마련하게 된다.
“한때 집안의 반대로 성악가의 길은 접었지만, 예술경영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물론 오케스트라 경영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수많은 재벌과 기업이 프로축구단과 프로야구단은 운영해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처럼요.”
얼마 있지 않아 찾아온 코로나 사태도 네오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연간 20회 이상 진행하던 연주회 대부분 취소됐다. 그래도 네오필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를 지지하는 후원자와 함께 클래식을 백신 삼아 코로나를 이겨 내자는 의미를 담은 C.V.C(코비드 백신 클래식) 시리즈 음악회와 소규모 살롱 음악회를 진행해 네오필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거쳐 재정비…기량·티켓↑
코로나가 끝나갈 즈음인 2022년 네오필은 운영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논의를 시작했다. 그전에는 대학을 막 졸업한, 경험이 적은 젊은 단원들 연습 시간을 늘려서 기량을 올리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유학을 다녀오거나 시향에 들어가지 못한 역량 있는 단원들을 품는 식이다. 연주 횟수가 줄면서 일부 단원은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기존 단원도 재오디션을 실시했다.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 단원 물갈이가 진행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오케스트라 기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2023년엔 다시 금정문화회관 상주단체가 됐다.
“운영이 어려울 때는 어떻게든지 연주의 맥을 이어 가는 게 중요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예산을 늘리고, 좋은 연주자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오케스트라가 사는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산이 배 이상 늘면서 기량이 뛰어난 협연자를 불러올 수 있게 되고, 다행히 티켓도 잘 팔려서 선순환되고 있습니다. 2023, 2024년을 거치면서 연주에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어린이 대상 ‘꼬꼬마 음악회’를 열면서 티켓 파워도 실감했습니다.”
‘3·3·3’ 구조(정부 지원, 티켓 수익, 기부금)로 운영되는 민간 오케스트라 뉴욕필을 예로 들며 시립교향악단이 있지만 시립에 준하는 제2, 제3의 민간 오케스트라도 함께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6월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이 민간 오케스트라에도 확실하게 개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턱대고 지원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엄격하게 심사해서 역량을 발휘하는 단체는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시에서 지정한 전문예술법인만큼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향적인 검토를 당부드립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