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창오리 군무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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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겨울 철새다. 10월 시베리아를 떠나 한국에서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생활하다 3월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몸짓은 지구상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에도 유일하게 소개된 한국의 자연생태다. BBC는 수만 마리가 검은 연기처럼 하늘을 휘저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펼치는 군무를 악마의 혼령이 춤을 추는 듯하다고 묘사했다.

악마의 혼령이 한낮 호수에 내려앉으면 하나하나의 개체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가창’도 일제강점기에 ‘유리처럼 예쁘다’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곳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낭설이라는 게 정설이다. 1980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다. 학명이 ‘Anas formosa’인데 ‘anas’는 ‘오리’라는 뜻이고 ‘formosa’는 ‘아름다운, 매혹적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혹적인 오리라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얼굴에 노란색과 녹색이 조합된 태극무늬가 있다고 해서 태극오리 또는 반달오리로 부른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때론 이런 습생이 생존에 치명적 위협이 되기도 한다. 군집이 크고 밀집해 있는 상황은 사냥꾼의 표적이 되기 쉽다. 1947년 일본에서 사냥꾼들에 의해 하루에만 5만 마리가 희생됐다는 기록이 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흔하게 관찰되던 철새였지만 한국으로 서식 범위가 좁아진 것은 인간의 밀렵이 만든 환경적 영향이 크다. 지금은 전체 종의 95%가 한국에서 겨울을 보낸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항공기 엔진에 부딪힌 조류가 가창오리로 밝혀졌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여객기 양쪽 엔진의 깃털과 혈흔을 조사한 결과 가창오리였고 CCTV로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1차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가창오리의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자연과의 공존을 무시한 인간의 죄를 물어야 한다. 한국공항공사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조류 충돌 영향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의 위험성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이야기다. 자연과의 공존을 도외시한 결과 인간과 가창오리 모두에게 재앙으로 돌아온 셈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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