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미물? 크릴새우에 지구 운명 달렸다" [바다 인(人)스타]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
부일 해양CEO아카데미 12강
극지가 가진 환경적 가치 강조
지구적 문제 해결 실마리 쥔 곳
"지속가능발전 더는 선택 아냐"
“크릴새우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종이 아닙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칼자루를 쥔 종입니다.”
지난 22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해양CEO아카데미 12강에서 극지연구소 신형철 소장은 극지 연구의 중요성과 우리나라가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 목소리 높였다. 먼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친숙한 속담을 언급하며 극지가 가진 환경적 가치를 강조했다.
“크릴새우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이를 배설물 형태로 배출해 바다 깊이 침전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바다로 흡수하는데, 이는 매년 우리나라 자동차 5부제를 5년간 운영한 것과 맞먹는 이산화탄소 감소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는 크릴새우가 지구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 소장은 남극과 북극이 단순히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쥔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변화 등 전 세계적인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관찰 지점이라는 이야기다.
북극해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으며 태양 에너지를 반사하는 효과가 감소하고, 더 많은 열이 바다로 흡수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극지의 해류 순환이 교란되면서 적도의 열기와 극지의 냉기를 조절하는 자연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지구 전체의 기후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인류가 직면할 환경적 재난을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극지 연구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최대 66m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요 연안 도시인 부산과 인천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해수면이 단 1m만 올라가더라도 도시의 저지대는 침수 위험에 처하고, 방파제 설계나 도시 기반 시설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극지 연구는 1988년 세종기지 설립으로 시작됐다. 이후 북극 다산기지 개설(2002년)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도입(2009년) 등으로 연구 기반을 확장했다. 초기에는 자원 부족과 열악한 환경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경제적 도약기에 극지 연구를 시작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신 소장은 평가했다. 국가 위상과 미래 세대를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인 극지 탐험 사례도 언급하며, 극한 상황에서도 리더십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영국의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점을 관통하는 탐험을 시도하던 중 배가 얼음에 갇혀 조난당한 상황에서도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얼음 위에서 생존하며 협력을 통해 극한의 환경을 이겨냈습니다. 배가 부서진 뒤에는 6~7m 길이의 조각배를 타고 1000km 이상의 거리를 항해해 구조대를 불러왔고, 크레바스를 넘어 다시 대원들을 구조했습니다. 이러한 섀클턴의 리더십과 생존 전략은 현대 극지 연구는 물론 기업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 소장은 강연 말미에 극지 연구가 단순히 학문적 탐구가 아닌,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투자임을 재차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극지 연구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할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자원 관리는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극지 연구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열쇠입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