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없어 비워 두느니 노인 복지 시설 등 재탄생 길 터야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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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어린이집 절반이 공실

법 개정으로 용도 변경 가능해졌으나
모르거나 비용 부담 등으로 방치 일쑤
최근 노인일자리 시설 등 활용 움직임
시 공동주택지원금 사용 등 권장 모색

부산 남구 아파트 단지 내 폐원 어린이집. 부산 남구 아파트 단지 내 폐원 어린이집.

〈부산일보〉가 파악한 부산 지역 3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내 폐원 어린이집은 400여 곳에 달한다. 관련 법에 따라 필수 시설로 마련된 이들 어린이집은 별도 건물로 지어지거나 아파트 관리동 내에 들어서 있지만, 많은 곳이 입주민의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에 공실로 남아있다. 하지만 ‘쓸모’만 제대로 찾는다면 이들 폐원 어린이집이 시와 구·군에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

■용도 변경은 언감생심?

지난달 중순 취재진이 찾은 부산의 A아파트. 준공 20년이 넘은 A아파트의 어린이집은 입주민 보육 수요 급감에 2023년 초 폐원했다. 이후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비어 있던 어린이집을 활용해보려 했지만, 관련 법령상 아파트 필수 시설의 용도 변경이 허용되지 않아 포기했다. 어린이집을 다시 열기 위해 운영자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다행히 지난해 4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대한 용도 변경의 길이 열렸지만, 아직 용도 변경은 언감생심이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한때 용도 변경을 통해 상가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어린이집 용도로 지어지다 보니 방과 벽이 많고, 천장이 낮아 구조적으로 변경이 쉽지 않았다”며 “리모델링 비용도 만만찮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과 관리사무소가 용도 변경이 가능해진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용도 변경의 방향을 잡더라도 입주민 동의율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B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어린이집은 노유자 시설로 분류되는데, 같은 노유자 시설인 경로당이나 아동 관련 시설, 사회·근로복지시설로 용도 변경은 전체 입주자 2분의 1, 이외 시설은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며 “입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동의율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리모델링 비용을 입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과 용도 변경 시설에 따라 엘리베이터나 무장애 공간 등의 의무 설치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점도 난관”이라고 말했다.

준공 25년이 넘은 C아파트 어린이집도 2023년 초 폐원했다. 부산시와 C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00세대에 가까운 C아파트에는 필수 시설로 어린이집이 들어섰고, 민간 어린이집 운영자에 분양됐다. 현재 이 어린이집은 폐원 후 소유자의 개인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부산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개인에 분양된 경우에도 주민공동시설로 보기 때문에 용도 변경을 위해선 해당 아파트 입주민 동의율을 충족해야 하는데, 입주민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폐원 어린이집은 ‘좋은 자원’

입주민 중에는 젊은 층의 입주가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용도 변경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또 폐원 어린이집이 용도 변경을 통해 아예 사라질 경우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입주민도 있다.

부산시 박현주 공동주택지원팀장은 “용도 변경에 대한 심의와 허가 등은 구·군에서 담당하는데, 지금까지 용도 변경을 추진 중이거나 행위 허가에 대한 신청이 들어온 지자체는 없다”며 “일부 아파트는 용도 변경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입주민 동의 절차와 용도 변경 신청 등 행정적인 절차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유휴 공간으로 남아 있는 단지 내 어린이집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아파트 입주민 김 모(60) 씨는 “오랫동안 아깝게 비워두는 것보다 입주민이나 지역 주민을 위한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복지·일자리 공간 확보를 추진하다 겪는 부지난, 높은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의 부담을 고려할 때 폐원 어린이집은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 고령화 추세에 맞춰 주간보호센터 등 노인 복지 시설이나 일자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시교육청과 협의해 늘봄교실 등 어린이를 위한 거점 시설로도 활용 가능하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폐원 어린이집을 활용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부산도시공사나 LH 소유인 데다 어린이집에 대한 운영·관리 권한을 구청이 갖고 있어 활용 방안을 찾고 용도 변경을 위한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게 수월하다.

부산도시공사에 따르면, 다대4지구 영구임대아파트 내 어린이집의 경우 지난해 관련 법령 개정 이후 입주민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로 활용 중이다. 부산시 주거복지팀 관계자는 “북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는 현재 자원 선순환 노인 일자리 공간인 ‘우리동네 ESG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시의회 김효정 의원은 "외부인 출입을 꺼려 반대하는 입주민은 일자리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으로 설득할 수 있다"며 "용도 변경 비용은 지자체의 공동주택지원기금이나 정부의 공동주택 지원 보조금을 활용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글·사진=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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