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은 '본글로벌(born-global)'이다
최진철 국립한국해양대학교 항해융합학부 교수
‘본글로벌(born-global)’이란 기업이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이 국내 시장에서 성장한 후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본글로벌 기업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원을 적극 활용한다. 이러한 본글로벌의 개념은 기업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산은 바다와 항구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예로부터 대한민국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는 부산이 태생적으로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 도시임을 보여준다.
부산의 글로벌한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왜관이 설치돼 일본과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개항 이후에는 부산항을 통해 서구 문물이 유입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이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주요 도착지이자 유엔군의 보급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70~80년대 경제 성장기에는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부산항은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산의 발자취는 글로벌을 향한 도전과 개방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부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해양 무역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세계와 소통해 왔다. 부산항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며 상호 교류가 이루어졌고, 이는 부산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비엔날레, 부산불꽃축제 등 다양한 국제 행사가 개최되며 부산의 문화적 역량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는 부산이 로컬에 머무르는 도시가 아닌, 글로벌을 향해 나아가는 도시임을 의미한다. 부산의 해양 및 해운 산업 역시 ‘로컬’이 아닌 ‘태생적 글로벌’의 산업 분야이다. 부산항은 세계 6위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이다. 부산의 조선 및 해양플랜트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필자가 몸담은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본글로벌 부산의 해양인재를 양성하는 산실로 지난 80년간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해양대는 1945년 설립 이래 해양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으며, 현재 글로벌 해양 강국을 위한 인재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국제 해사 기구(IMO)의 모델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해양 관련 대학들과 교류 협력을 맺고 있다. 대학이 나아갈 방향 역시 특정 국가의 유학생을 유치하여 캠퍼스의 국제화를 추동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캠퍼스 자체가 글로벌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학생과 교원의 인적 구성뿐만 아니라 교과과정과 학위,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 시설 모두가 부산과 한국을 넘어 태생적 글로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부산 시민과 산업계, 학계는 로컬과 글로벌의 이분법적 시각을 뛰어넘어 ‘태생적 글로벌’의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세계로 열린 도시로서의 발전에 달려 있다. 국립한국해양대를 비롯한 부산의 대학들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해양 및 해운 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동력이 될 때, 부산은 명실공히 글로벌 도시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 다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 외국어 능력 향상, 국제적 시각의 함양 등을 통해 시민 개개인이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부산의 본글로벌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부산을 세계 속에 빛나는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국제 사회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글로벌 도시로의 발전을 뜻한다. 부산이 가진 고유의 매력과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세계 속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진 도시로 자리매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본글로벌 부산’을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