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합의점 찾기보다 야당 비판 치중한 권성동 연설
尹 대통령 "민주당 탓" 논리 답습 우려
공회전 국정협의체 정상화 앞장서야
민주주의 퇴행, 민생 파탄, 국가 신인도 추락….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비상 사태의 늪에서 빠져나올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난맥상에 돌파구를 내기 위해 여야정이 어렵사리 합의한 국정협의회도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가 전환의 시험대가 돼야 할 텐데, 출발부터 삐걱댄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정 혼란 주범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계엄 후폭풍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는 여당이 옹졸해 보인다. 국정협의체를 통해 반도체특별법과 에너지 3법, 연금, 추경 등 현안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 대표는 연설에서 추경과 개헌, 연금 개혁 의지를 강조했지만 전체적으로 ‘야당 때리기’가 도드라졌다. 특히 비상계엄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 사과해 놓고도 ‘민주당’ 44회, ‘이재명’ 18회를 언급하면서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 질서 파괴자”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3년 성과를 부각했다. 내란 사태에 대한 통렬한 반성 대신 ‘야당 탓’ 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이다. 여당이라면 국가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면서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어야 옳았다. 국정 현안보다 조기 대선 국면을 의식한 여론전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무한 정쟁 구도를 깨지 못하면 국정 정상화는 요원하다.
12·3 계엄이 ‘거대 야당의 패악질’ 탓이라는 윤 대통령의 논리가 여당 대표 연설에서 답습된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등 여당 지도부와 중진이 윤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면회’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 내각과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개인 자격’ 핑계를 댈 때 뭐라 비판했나. 공당의 지도부는 ‘개인’이 아니다. 면회 후 ‘나치 의회 독재’ 등 윤 대통령 메시지를 전파하는 스피커 역할을 자처한 것을 ‘인간적 도리’로 보기도 어렵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가 계엄령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윤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던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내수 부진이 민생을 옥죄고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래서 추경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여당은 ‘1분기 예산 조기 집행 후 검토’라는 미온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날 권 대표는 연설에서 “추경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물러서 협상의 실마리를 남겼다. 추경 규모나 국회 심사 시일을 감안하면 실제 통과가 쉽지 않지만 일단 협상 국면이 열린 건 다행스럽다.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에너지 3법, 연금 개혁도 앞장서 매듭을 짓는 모습을 국민에 보여야 한다. 국가 경쟁력과 온 국민의 삶이 걸린 현안을 제쳐두고 언제까지 ‘야당 탓’만 하고 있을 텐가. 여당은 정부와 국정 운영의 공동 운명체라는 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