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화려한, 이토록 강렬한 사랑이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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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김 ‘감정의 스펙트럼’ 전
갤러리 조이, 28일까지 열어
작가 특유의 화려한 무늬 눈길
사랑과 휴식 담은 유쾌한 작품

레오 김 ‘감정의 스펙트럼’.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감정의 스펙트럼’. 갤러리조이 제공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즐겨보던 사극이 있었다. 주인의 학대를 참지 못해 도망간 여자 노비가 사건에 휘말리며 양반 아씨로 살며 조선시대 변호사 격인 외지부로 활약하는 이야기였다. 드라마에선 위기 상황에 자주 등장한 대사가 있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 “난 최고야! 난 대단해”를 크게 외친다. 이 대사는 진지한 상황을 단번에 유쾌하게 변화시키기도 했다.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조이에서 열리고 있는 레오 김 작가의 개인전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면서 문득 “넌 최고야! 넌 대단해”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림들이 마치 나에게 이렇게 응원을 해 주는 느낌이었다.

부산에서 오랜 세월 전업 작가로 활동한 레오 김은 그림마다 특유의 패턴이 있다. 표범 무늬가 그것이다. 작가 이름인 레오 역시 표범을 뜻하는 레오파드라는 단어에서 왔다. 다른 작가와 차별되는 자신만의 표현 방법이 있다는 건 작가에게 엄청난 강점이다. 하지만 표범 무늬는 사실 회화에서 쉽게 다루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한국에서 표범 무늬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편이고 무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심지어 다른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표범 무늬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그림 속에 녹여내는 건 작가의 내공이다.

“한국 최고의 미술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재수했고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난히 애틋하죠. 아버지가 표범 무늬를 좋아하셨어요. 제게 표범 무늬는 결국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고 작가로 시작하게 하고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죠.”


레오 김 ‘알록달록’.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알록달록’.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기쁨을 도모하다’.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기쁨을 도모하다’. 갤러리조이 제공

표범 무늬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복숭아 그림은 어머니의 사랑을 뜻한다. 젊은 나이, 가장을 떠나보내고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상황은 힘들어도 항상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일 하나를 줄 때도 가장 예쁜 접시에 담아서 주셨다. 탐스러운 복숭아와 화려한 표범 무늬 접시는 다양한 사랑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른 한쪽에선 완전히 다른 느낌의 휴식 시리즈가 있다. 반짝이 물감을 많이 사용한 그림 속에는 긴 머리카락, 긴 속눈썹, 긴 팔과 긴 손톱을 가진 여자들이 정면을 응시하거나 고혹적인 자세로 누워있다. 휴식을 이렇게 화려하고 해석한 작가의 그림을 보면, 마치 그림에서 빛나는 여인과 동일시되는 마법에 빠진다. 당신은 이렇게나 반짝이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속삭여주는 기분이다.


레오 김 ‘JUST DO IT’.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JUST DO IT’.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휴식’. 김효정 기자 레오 김 ‘휴식’. 김효정 기자


레오 김 ‘매혹’.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매혹’. 갤러리조이 제공

레오 김 작가의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레오 김 작가의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실제로 레오 김 작가의 그림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일화가 있다. 힘든 상황에 몰린 청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 남은 돈으로 커피 한 잔을 샀다. 카페의 위층이 마침 갤러리였고, 레오 김 작가의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청년은 결국 울었다. 청년의 행동에 놀란 갤러리 대표가 그 사연을 알게 되었고, 청년은 “이 그림을 보며 살고 싶어졌다. 나도 빛나고 싶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표범 무늬의 의자와 하이힐, 빛나는 드레스와 여인 등 화려하고 강렬한 첫 이미지는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자유롭게 공간을 활보하는 작가의 에너지는 예술이 주는 응원이자 위로이다.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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