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청도설(道聽塗說) 2025
이봉재 (주)이화기술단 대표이사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보기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때가 있다’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원은 을사년스럽다고 느끼는 한국인의 트라우마에서 생긴 형용사라 할 수 있다.
‘을사사화’는 조선시대 중기인 1545년(을사년)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으로 어린 명종의 즉위와 관련된 사림과 훈구파 간의 정치 파벌 싸움이 주된 배경이다. 대윤은 소윤의 사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음모를 꾸미고, 소윤파의 주요 인물들을 제거하고 정치적 탄압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림 인사들이 유배되거나 처형당하였다. 이 사건은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의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으며 이후에도 사림과 훈구파 간의 대립은 계속되었다. 조선 시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권력의 중심이 어떻게 변화하고 정치적 암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 하겠다.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을사늑약’은 일본의 군사적 위협과 압박 아래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빼앗기는 내용으로 체결된 조약이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이 있었지만 조선은 당시 국제 정세에서 고립된 상태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국권을 빼앗겼다. 국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임오군란(1882년), 갑신정변(1884년), 동학혁명(1894년), 갑오개혁(1895년) 등 자체적인 혁명 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외세를 등에 업고 왕권 유지를 도모한 결과 청군과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는 전쟁터가 되었고 일본군이 승리한 여파로 조선의 국권은 상실되었다. 국태민안을 소홀히 한 고종은 신권과 왕권의 상호 견제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노론과 여흥 민씨 척족을 의지하여 왕권 강화에만 몰두한 결과 국력은 쇠락하고 여흥 민씨 관료만 260명에 이르는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1965년(을사년) 4월 일어난 반일 학생운동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반민족 행위에 반대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본과의 인식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와 함께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전후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결한 협정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 없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미 있는 학생운동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운동권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2025년(을사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여론이 찬반으로 나뉘어 집회나 시위가 주말마다 대규모로 행사되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을사년은 매번 왜 이럴까?
불교계에서 존경받는 탄허 스님은 2025년에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희망적인 예언을 하였는데 을씨년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망을 품어도 될까? 김일부 선생의 ‘정역(正易)’에서는 을사년을 목생화(木生火)로 해석하여 불기운이 강한 해로 숨겨졌던 것이 다 드러나서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병오년, 정미년까지 불기운이 3년은 간다고 하니 나라 시끄러움은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사의 역경을 이겨내 온 한국인의 지혜와 의지로 정치인들의 권력 막장 싸움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대운이 열리어 권능의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