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을 가진 전공의 “1년간 주 70시간 일하고도 사명감은 바닥” [의정 갈등 1년]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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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 전공의’ 다시 인터뷰
“현장 잔류, 극소수에게만 알려
정부 고압 자세론 더 악화할 뿐”

19일 부산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환자 진료 상황을 살피고 있다. 이재찬 기자 19일 부산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환자 진료 상황을 살피고 있다. 이재찬 기자

“의료 현장의 ‘뉴 노멀’은 결국 간호사 착취나 환자 희생으로 이뤄진 거죠.”

지난 18일 전공의 집단 사직에 참여하지 않고 병원에 남은 부산 지역 전공의 A 씨는 사태 1년째인 현재, 경증 환자 진료 감소 등으로 인한 ‘뉴 노멀’이 찾아왔다는 시각에 맘 편히 동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A 씨는 “환자 스스로 경증인지 아닌지 모를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뉴 노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많은 전공의가 이 나라의 의료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을 완전히 잃은 상황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엉망인 의료 현장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A 씨는 의대생 동맹휴학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모여 꾸린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이하 다생의)’ 모임 소속으로, 사태 초기 〈부산일보〉와의 인터뷰(부산일보 2024년 3월 12일 자 2면)를 통해 의료 현장에 남은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1년이 흐른 시점에서 취재진은 다시 A 씨에게 현장의 상황을 물었다.

다른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운 그는 당직을 포함한 주 70시간 근무를 1년간 지속해 왔다. 여전히 병원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극소수 지인에게만 알렸다. A 씨는 “신규 환자는 받지 않고 있고 응급 체계도 당직 의사들이 많지 않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다”며 “아무래도 환자들의 고통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동의했던 A 씨이지만, 사태를 1년 가까이 끌어오며 의료 현장을 악화시킨 건 정부의 고압적 자세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계엄 포고령을 통해 전공의 처단 의지를 밝히면서 일말의 신뢰마저 잃었고, 의료 대란 속 병원 정상화를 위한 정책 또한 병원 자본만을 위한 대책에 불과했다는 것.

그는 “(정부의 3차 병원 수가 조정 등 대책은) 병원 자본을 도와줬을 뿐, 그 외에 이 나라 의료를 장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다”며 “결국 응급, 중증 등 ‘필수의료’라고 불리며 눈에 잘 띄는 것들 위주로 대책 논의가 이뤄진다는 점도 아쉽다”고 전했다.

시간이 흐르며 전공의들의 입장이 각기 달라졌고, 집단행동 시점 때와는 다르게 통일된 의견 없이 와해돼 있다는 게 A 씨의 전언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정부가 일부 물러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타협의 주체는 정부와 전공의 둘뿐인데, 우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진정성 있는 타협안을 내놔야 한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던) 전공의들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전공의들만의 잘못으로 보고 비판하는 게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그렇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증원 숫자 대치에 매몰된 사이 지역의사제 도입이나 공공의대 등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실망감을 더했다. 수도권 주요 종합병원이 지역 의료진을 흡수하는 흐름도 여전하다. A 씨는 “공공의료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시민 복지 또는 의료의 보편적 보장과 같은 관점에서 비전을 논의해야 할 때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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